
얼마 전 독일 출장길에 있었던 일이다. 독일 국적항공기여서 그랬는지 기내에는 독일인으로 보이는 승객들이 많았다. 내 옆자리에도 나이 지긋한 독일 노신사가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후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됐다. 메뉴는 비빔밥과 돼지고기 안심구이 두 가지. 독일항공의 맥주 맛에 감탄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안심구이를 택했고, 옆자리의 독일 노신사는 비빔밥을 달라고 했다.
'아니 독일 사람이 비빔밥을?'
비빔밥과 김치, 갈비탕 등 한국음식의 세계화가 많이 진행됐다고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한국음식을 고르는 외국인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호기심이 들었다. 독일항공의 비빔밥은 어떻게 나올까.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옆자리로 살짝 시선을 돌리자 갖가지 야채와 소고기 볶음이 눈에 들어왔다. 고추장에 조그만 참기름까지 갖출 건 다 갖춘 구성이었다.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꽤나 신경 쓴 티가 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참 정신없이 밥을 먹다 옆자리를 보니 독일 노신사가 포크로 나물과 고기를 일일이 찍어 먹고 있었다. 물론 고추장과 참기름은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비빔밥을 시켰지만 비빔밥이 아닌 음식을 먹고 있는 상황.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그 독일인의 얼굴에는 '이게 무슨 맛이지?' 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저 사람은 앞으로 평생 비빔밥을 저 맛으로 기억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코리안 페퍼 페이스트'와 '세서미 오일'을 함께 섞어 먹으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맵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도 고추장과 참기름을 밥에 섞었다. 곧이어 낮은 탄성과 함께 "딜리셔스!" 연발하며 남은 비빔밥을 먹었다.
뿌듯한 기분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제대로 된 맛을 느끼지 못하고 비빔밥을 그저 '밍밍하고 이상한 음식'이라고 생각할까. 먹는 방법을 설명하는 문구 한 줄만 메뉴판에 들어가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음식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뉴욕 타임스퀘어에 비빔밥 광고가 상영되고 김치하면 '코리아'를 떠올릴 만큼 한국문화는 이제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목걸이가 된다. 단순히 문화를 전파하는 것만으로는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한국문화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