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요즘 정유사 사람들을 만날 때면 묻는다. '1분기 실적 어떨 것 같아요?". 대답은 모두 비슷하다. "작년 4분기보다는 적자폭이 훨씬 줄거나 어쩌면 흑자전환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마디씩 꼭 한다. "실적 개선되는 건 좋은데 욕먹을 게 뻔해서…". 기름 값 올려서 돈 벌었으니 소비자들이 화를 내지 않겠냐는 의미다. 국제유가가 내릴 때 기름 값은 '찔끔' 내리고 유가가 오르면 '팍팍' 올린다는 '내릴 땐 찔끔, 올릴 땐 팍팍'이라는 말과 맥이 통한다.
정유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소비자 가격을 높이거나 국제유가가 오르거나. 정유 4사간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국제유가와 무관하게 소비자 가격을 마구 높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정유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국제유가 상승이다.
정유사는 과거 특정 시기에 구매한 원유 가격보다 현 시세가 더 높을수록 마진을 많이 남긴다. 100원에 원유를 사왔는데 국제유가가 계속 올라 200원이 됐다면 현 시세에서 석유제품 가격을 적용할 수 있으니 마진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100원에 사왔으니 100원에 해당하는 가격에 팔라고 하는 소비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 먹힐 가능성은 낮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100원 이하로 떨어지더라도 기업은 최대한 100원에 해당하는 가격을 지키려 든다. 소비자 입장에선 열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은 단호하다.
기업에 일정 부분 이익을 포기하라는 요구보다는 이참에 기름 값 구조를 바꾸자는 요구가 차라리 현실적이다. 정부가 '성역'처럼 여기는 유류세 개편 논의를 시작해볼 때도 됐다는 말이다.
휘발유 기준 리터당 745.9원 고정세금이 부과돼 꼬박꼬박 안정적 세수를 걷는 정부는 피식 웃고 말 수도 있겠다. 담뱃값을 높이거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힘겨운 세수 증대에 나선 상황에서 정부 선택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기름 값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쌓이는 사회 전반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고민 못할 일도 아니다. 제품가격과 유류세가 연동하도록 하되 유가가 한없이 떨어져 세금이 덜 걷힐 기미가 보이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연 평균 전체 유류세 규모를 파악한 뒤 세수가 일방적으로 증가하거나 낮아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품 가격과 연동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지금보다는 제품 가격 예측이 가능해져 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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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부는 "기름 값이 묘하다(이명박 전 대통령)"며 정유사 팔 비틀기를 통한 물가 안정을 유도하려 했다. 올 초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업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유가가 하락하는 만큼 제품가격도 내리라고 했다.
석유제품 가격에 관한 소비자 불만의 큰 부분을 유류세가 차지하고 있음에도 비난의 화살을 정유사로 돌리게끔 유도하는 건 정도가 아니다. 정부도 이제 솔직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기름 값 문제를 다룰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