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빼닮은 현대차 노조]1987년 노조 설립부터 현장조직 활동…선거 때마다 계파 간 합종연횡, 명과 암 동시에

한국 노동계를 상징하는 현대차 노조의 집행부 선거가 시작됐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만 5만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노조다. 기본 예산만 연 90억원에 달하고, 별도의 전임자 임금 예산과 100억원 이상의 적립금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는 △안현호 △문용문 △이상수 △전규석(기호순) 등 4명의 후보가 지부장 입후보했다. 4명의 후보는 지난 18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선거 운동을 펼친다. 지난 22일에는 공장 라인까지 세우며 후보자별 영상 유세가 방영됐다.
지부장 임원을 뽑는 1차투표는 오는 28일이다. 결선투표까지 가면 다음달 4일 향후 2년간 현대차 노조를 이끌 지부장과 부지부장 등 주요 임원진이 결정된다.
지부장 선거 선거가 끝나면 각 사업부(공장) 대표와 대의원 선거도 진행된다. 현대차 근로자 A씨는 "현대차는 사실상 공장별로 운영된다"며 "각 공장을 대표하는 사업부 대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후보군은 열띤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다. 기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각 공장을 다니며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후보 비방 등 과열양상도 나타난다. 각종 SNS(소셜미디어)는 물론 화장실 벽 낙서까지 불법 선거의 감시대상이다.
노조 선관위는 공고를 통해 "불법 혼탁 선거 방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자 한다"며 "특정 후보자의 사생활이나 가족관계를 들춰내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1975년 ‘포니’를 내놓으며 80년대 급성장했다. 공장이 세워진 울산에는 일자리를 찾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군대에서 전역한 사람들이 몰렸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취업할 시기와 맞물린다.
80년대 노동환경은 취약했다. 빠른 속도의 컨베이어벨트를 타야 했고, 근무시간도 고무줄이었다. 정문을 통과할 때는 머리카락이 길다고 경비원이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은 민주화운동과 함께 노동운동으로 번졌고, 현대차도 피할 수 없었다.
80년대 초부터 생겨난 독서 모임 등을 중심으로 1987년 노조가 설립됐다. 현장조직은 노조 설립 시기부터 견제세력으로 출발했다.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세력에서 여러 후보가 출마하면서 표가 갈렸고, 이전 노사협의회 노동자대표였던 이영복 노조위원장이 선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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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선거결과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민주노동자실천협의회(민실협)’ 조직됐고, 이후 다양한 조직이 생겨났다. 외환위기는 현대차 노조를 더 강하게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리해고가 쉬워지면서 1998년 현대차는 1만여 명의 정리해고를 준비했고, 노조는 강하게 저항했다.
당시 대다수 기업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고, 현대차 노사 문제는 자본대 노동의 대결로 격화됐다. 결국 정리해고 277명, 무급휴직 1968명으로 결론이 났는데, 이 사건으로 현대차 노조가 회사와 대립적 관계를 갖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2000년대 들어 노조는 회사에 고용안정과 복지 등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계급, 이념보다는 집단 이익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되면서 한국 민주화 운동세력이 방향을 잃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공장별, 라인별로 이익이 갈리면서 현장조직 내부에서도 갈등과 반목이 지속됐고, 수많은 계파가 명멸했다. 지금도 현대차에는 10여 개의 현장조직이 활동 중이다. 특히 집행부 선거는 현장조직이 갈라지고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8대 지부장 선거에 후보를 낸 4개 조직이 주요 조직으로 꼽히는데,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금속노동자민주연대(금속연대) △민주현장투쟁위원회(민주현장) △현장노동자 등이다.
앞의 세 조직은 민주노총 내부 계파인 현장파(민투위), 중앙파(금속연대), 국민파(민주현장)의 영향을 받았고, 현장노동자는 실리주의 노선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큰 의미는 사라졌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는 현대차를 분석한 저서 ‘가보지 않은 길’에서 "과거에는 PD(민중민주), NL(민족민주)계 간 이념 경쟁이었지만 이념의 설득력이 약화된 최근에는 조합원의 이익극대화 전략에 매진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집행권을 둘러싼 현장조직 간 경쟁은 노사대립으로 이어졌다. 공약을 회사로부터 얻어내야 해서다. 얻어내지 못하면 다른 현장조직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했다. 회사와 교섭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 현장조직은 교섭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한다.
현대차 근로자 B씨는 "집행부와 다른 현장조직도 교섭위원으로 회사와 협상에 나설 때가 많은데, 함께 잠정합의안에 합의해놓고 교섭장에서 나오면 바로 반대를 외친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성장과 함께 연 소득 9000만원의 고소득자가 된 현대차 조합원의 투쟁은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노조 내부의 비리 사건도 이런 시선에 한몫했다.
오명에 가려져 있지만 현대차 노조가 한국의 근로환경을 바꾸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2001년 2462시간에 달했던 현대차 생산직의 노동시간은 2016년 1830시간으로 떨어졌다. 주간 연속 2교대 등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영향인데, 이는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