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氣-UP)하기 좋은 나라]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1) 세 별이 자란 진주 지수 승산마을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 허씨 집성촌에는 '승산마을 금강산'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이 마을에 있던 두 만석꾼(토지로 200만평 규모) 중 큰 집인 '큰 승지' 지신 허준 선생(GS 창업자 허만정옹의 부친)의 의장(구휼을 위한 공동토지)을 통한 실천적 나눔은 마을 내 다른 친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또 다른 만석꾼인 '작은 승지' 허만진 옹(翁) 자택 마당에 '승산마을 금강산'이 만들어진 계기이기도 하다.
이충도 지수초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우리 마을 큰 승지댁인 지신 어른(허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주변 친인척들에게 영향을 미쳐 마을 전체에 퍼졌다"며 "승산마을 금강산이라는 독특한 돌산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돌산은 사회적 기부나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규휼도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살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신의 근검절약과 노동의 신성함을 물려받은 허만진옹은 어려운 이웃들이 춘궁기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는 그저 곡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마을 인근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가져다 놓으면 그 때서야 쌀 한되나 한말씩을 노동의 대가로 지급했다.
쌀을 얻어가는 사람들이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쌀을 갖도록 해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져다 놓은 돌들이 쌓여 마치 1만2000 봉우리인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승산마을 금강산'으로 불렸다.
6.25 한국전쟁 직후 허만진의 후손이 일찍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 그 집안을 지킬 사람이 없어 집터는 거의 사라졌고, 앙상해진 '금강산'만이 그의 정신을 지키고 있었다.
단순한 자선을 통한 사회구제가 아니라, 어떤 노동이라도 그 가치를 인정해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그의 정신은 '무노동 무임금'의 이슈로 갈등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큰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