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폐배터리가 전기차 충전소로 변신…제주에서만 가능한 이유는?

[르포]폐배터리가 전기차 충전소로 변신…제주에서만 가능한 이유는?

제주=최민경 기자
2022.10.19 05:40

[기획]미리보는 탄소중립, 제주도의 10년 실험①

[편집자주] 제주도가 '탄소프리 아일랜드' 비전을 선포하고 탄소없는 섬 만들기에 나선지 10년. 제주도 현장 취재를 통해 그간의 성과와 남은 과제를 점검하고 글로벌 탄소중립 여정에 던지는 시사점을 찾아본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모듈 검사 준비장/사진=최민경 기자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모듈 검사 준비장/사진=최민경 기자

"보통 사람들은 배터리를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하는 일은 배터리 '재제조'입니다. 재사용은 있는 그대로 원래 용도에 다시 쓰는 것이고, 재활용은 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하는 개념입니다. 저희 센터는 다 쓴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재제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면서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차를 도입하는 만큼 폐배터리에 대한 대비가 돼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전기차 보급률 1위인 제주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 후 배터리를 수집하고 재제조하는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를 세웠다.

지난 14일 찾은 제주시 아라동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제주도가 사용 후 배터리를 어떻게 재제조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제주테크노파크(JTP)가 지난 2019년부터 운영 중인 국내 최초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 전주기 체계' 구축 센터다. '탄소 없는 섬'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가 국·도비 450억원을 투입해 설립했다. 현재 회수된 배터리의 성능을 평가하고 재사용 배터리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제주도가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2015년 2월에 발행된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서 나온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김 팀장은 "NREL은 차량을 10년 이상 사용하고 수명이 종료돼도 배터리는 어느정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되고 경제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며 "이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침 제주도는 사용 후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대기환경보존법에 따라 2020년 12월까지 출고된 전기차는 지방자치단체에 폐배터리를 반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 팀장은 "그 당시엔 대기환경보전법의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 배터리는 말소할 때 지자체장에게 반납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며 "JTP가 제주도 기업 지원기관으로서 사용 후 배터리라는 무상의 자원을 기업에 저가로 보급하면 기업들이 부가가치 높은 응용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폐배터리 소재를 재활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제조'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셀→모듈→팩'으로 구성된 배터리를 셀 이하로 분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공수가 필요하다. 인력이 10여 명 남짓인 센터에선 배터리 모듈을 용도에 맞게 재조합해 다시 쓰는 재제조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적재실/사진=최민경 기자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적재실/사진=최민경 기자

입구에 들어서니 각종 전기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팩이 가득 쌓여 있는 적재실을 볼 수 있었다. 지난달 말 기준 회수된 전기차 배터리는 300여 개 정도다. 센터는 2017년부터 제주도로부터 도내에서 발생한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서 전량 회수하고 있다. 이 중 30% 정도를 연구와 응용 제품 등에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적재실에 보관하고 있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배터리팩을 모듈로 분해하는 모습/사진=최민경 기자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배터리팩을 모듈로 분해하는 모습/사진=최민경 기자

센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배터리를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 평가하는 성능평가 공정실이 있다. 배터리를 팩과 모듈 단위로 분리해 검증하는 장소다. 팩 검사 준비장에서는 배터리 팩을 뜯어내 외관 검사를 진행한다. 배터리마다 제조사가 달라 뜯어내는 과정을 자동화할 수 없고 직접 손으로 작업해야 한다.

외관 검사를 마친 폐배터리는 팩 검사장으로 옮겨진다. 이 곳에서 충방전기, 환경 챔버, 압착기, 충돌시험기, 열충격기, 단락시험기, 고도시험기, 침수시험기 등 배터리 성능평가 장비와 안전성 장비들을 볼 수 있었다. 센터는 배터리 팩 하나당 약 48시간의 충·방전 검사를 수행해 남은 용량에 따라 'A~E' 5단계로 분류한다. 팩을 다시 모듈 단위로 분해해 24시간 동안 성능 검사를 수행하고, 모듈의 용량 단위에 따라 5등급으로 다시 나눈다.

배터리 팩 잔존가치 검사장/사진=최민경 기자
배터리 팩 잔존가치 검사장/사진=최민경 기자

김형진 JTP 에너지융합센터 성능평가팀장은 "배터리팩 하나를 분해하는 데 한시간 정도 걸리고, 성능평가 시험에 3일 정도 걸린다"며 "배터리 분해하고 시험하는 시간을 단축해서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적으로 잔존용량이 70% 이상 남은 배터리는 전기차 충전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잔존용량이 50~60% 이하로 남은 배터리는 모듈에서 리튬·코발트·니켈·망간 등 금속을 추출하는 민간 기업에 매각할 방침이다.

사용 후 배터리로 만든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전기차 충전기(왼쪽)/사진=최민경 기자
사용 후 배터리로 만든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전기차 충전기(왼쪽)/사진=최민경 기자

내부를 둘러보고 센터 밖에 나가니 200kWh(킬로와트시)급 전기차 충전용 ESS를 볼 수 있었다. 센터가 르노코리아 SM3에서 나온 폐배터리 8개 반을 모아 재활용한 실증용 ESS다. 센터 옥상과 주차장에 설치된 태양광 전력이 저장된다. ESS는 바로 옆 전기차 충전기에 전력을 공급한다. 김 팀장은 "ESS를 이용해 방전된 SM3 8대를 충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사용 후 배터리로 만든 ESS를 전기차 충전 스테이션뿐만 아니라 가로등, 감귤 운반차, 오토바이 등에 적용하는 8건의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가 지자체로서 공공사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SS와 연결된 제주테마파크 주차장 태양광 지붕/사진=최민경 기자
ESS와 연결된 제주테마파크 주차장 태양광 지붕/사진=최민경 기자

김 팀장은 "사용 후 배터리를 다시 쓰기 위해선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제도가 만들어져있지 않고 국가기술표준도 내년 10월쯤 시행하기 때문에 전자제품 안전법에 의해 상용화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도처럼 공공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증과 무관하기 때문에 2019년부터 시제품을 공공사업에 활용해 기술을 축적하고 데이터를 취득하고 있다"며 "인증 체계가 표준화되면 이를 상용화하고 기업이 부가가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데이터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순수전기차 보급대수는 709만9000대로 2025년 1325만2000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배터리 개수는 2030년 2만여개로 추산된다. 센터는 배터리 보관용량을 500대까지 늘리고 2024년까지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활용 제품의 시험인증과 신뢰성 평가를 위해 12종의 장비를 추가로 도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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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경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최민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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