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 정산주기 단축, 글로벌 기준 역행"

"유통사 정산주기 단축, 글로벌 기준 역행"

김민우 기자
2025.10.02 04:20

정부 "납품사 보호" 규제 예고, 현금 유동성 위축 등 발생 우려
업계 "금융사 역할 강요" 반발… 유럽연합선 '최대 60일' 허용

국가별 직매입 정산주기 현황 및 글로벌 유통기업 직매입 정산주기/그래픽=윤선정
국가별 직매입 정산주기 현황 및 글로벌 유통기업 직매입 정산주기/그래픽=윤선정

정부가 대규모 유통업체의 정산주기 단축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면서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납품업체 보호라는 명분이지만 현금흐름 부담과 운영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주요국 사례를 봐도 한국보다 엄격한 규제를 두는 경우는 드물다. 업계에선 "국제기준에 역행하는 규제"라며 우려가 쏟아졌다.

앞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유통분야 납품업계와 현장간담회에서 "대규모 유통업체의 납품대금 지급실태를 전수조사 중이며 정산주기 단축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직매입 거래의 경우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특약매입의 경우 판매종료일로부터 40일 이내에 정산토록 규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기한을 더 줄여 납품업체, 특히 중소 제조업체의 현금흐름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유통업계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매출이 일어나는 시점보다 대금지급이 빨라지면 자금흐름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물론 쿠팡·마켓컬리와 같은 직매입 구조의 유통업체들은 상품을 대량매입한 후 일정기간 판매를 통해 현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현재 홈플러스의 경우 정산주기는 월판매 마감일로부터 30~45일 수준이다. 이마트는 평균 25일, 롯데마트는 20~30일로 알려졌다. 쿠팡의 경우 판매액의 70%는 15일 후에, 나머지 30%는 60일 후에 지급한다. 컬리는 납품일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최대 60일 후에 지급하는 구조다.

정산주기가 줄어들면 현금유입보다 유출이 앞서 유동성 부담이 커진다는 게 유통업계의 지적이다. 박리다매 구조의 유통업 특성상 이 압박은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재고소진과 매출 현금화 전에 대금을 지급하면 사실상 금융기관의 역할을 강요받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산주기 단축은 납품업체의 현금흐름을 돕겠다는 취지지만 현금 유동성 위축으로 오히려 중소 납품업체의 매입규모가 크게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연합(EU)은 '상업채무지연지급지침'(Late Payment Directive)에 따라 계약 당사자간 별도 합의가 없는 경우 기본 지급기한을 30일로 보고 계약 당사자간 합의가 있으면 최대 60일을 허용한다. 영국도 '상업채무법'에 따라 원칙은 30일, 최대 60일이 가능하다. 프랑스·독일 등 주요국도 유사하게 60일을 상한으로 정했다. 일본은 최근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오는 11월부터 하도급업체에 대한 지급만기를 60일 이하로 제한키로 했다.

미국과 중국은 아예 법적 상한을 두지 않고 거래 당사자간 계약에 전적으로 맡긴다. 미국 아마존·월마트는 30일·60일·90일로 나눠 판매자와 납품계약을 하고 정산한다. 하지만 30일과 60일 정산은 각각 2%, 1%를 뗀 금액을 지급한다. 대형 유통사인 코스트코·타깃·베스트바이도 최대 60일 정산체계를 운영한다.

중국 유통기업은 미국보다 더 길다. 중국 최대 유통기업 중 하나인 다룬파(RT-Mart)와 우마트는 최대 120일, 가전업체 쑤닝은 90일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정산주기 단축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산업구조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유통사는 판매마감과 검수일정, 물류 리드타임(입고·검수·출고 지연시간) 등 다양한 운영요인이 존재한다"며 "미국 등 상당수 나라는 유통기업 자율에 맡겨 운영하지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직매입 정산주기가 현행보다 단축되면 중소 납품업체의 납품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상품판매 전에 대금을 정산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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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기자

*2013년 머니투데이 입사 *2014~2017 경제부 기자 *2017~2020 정치부 기자 *2020~2021 건설부동산부 기자 *2021~2023 사회부 사건팀장 *2023~현재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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