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제주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하계포럼'을 계기로 'AI(인공지능) 반도체 아비규환'까지 거론한 가운데 SK실트론 매각 건의 진행 여부가 업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반도체 속도전 속에서 웨이퍼(반도체 칩을 만드는 얇은 원판) 제조사인 SK실트론을 파는 게 맞냐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당초 SK그룹은 지난 5월쯤 SK실트론을 두산그룹에 매각할 계획이었다.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 등 70.6%를 처분하고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이 분기당 수십조원을 벌어들이는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후 기류에 변동이 생겼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웨이퍼 전문 기업으로,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있다.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의 원점 재검토에 들어간 배경이다. 이후 최 회장은 그룹 차원에서의 AI 반도체 올인 전략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뉴 이천포럼'에서 SK그룹이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풀스택(full stack)으로 갖췄다고 평가하며 "지금 전속력으로 전방위적인 AI 전환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맞이한 절호의 기회는 다시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의 시각은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났다. 최 회장은 내년 반도체 수요가 최대 100%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AI 반도체를 구하기 위한 '아비규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힘을 줬다. 또 국내외 팹 증설을 거론하며 "우선순위를 가려서 빨리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속도전에 그룹의 미래가 달렸다고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재계는 SK실트론 매각이 SK그룹에 있어 일종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고 본다. 진행하자니 최 회장의 반도체 올인 전략과 어긋나고, 전면 백지화를 하자니 재계 내 신의(信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지나친 장고를 거듭하는 것은 일단 득될 게 없다는 분위기다. SK그룹 일각에선 이달 말쯤 SK실트론 매각의 진행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의 메시지만 본다면 SK그룹이 SK실트론을 파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는 상황"이라며 "두산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건인 만큼 신중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