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산업의 쌀, AI의 뼈]④사이클 대신 AI 스페셜

"사이클은 없다."
최근 석유화학 및 철강업계에 만연된 인식이다. 과거 수 년 단위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던 법칙이 깨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과잉 공급과 수요 침체라는 구조가 만든 공통 변화다. 중국 기업들은 값싼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석유화학 및 철강 제품을 찍어낸지 오래다. 건설업과 같은 주요 전방 산업 역시 국가 성장기의 업황을 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상승세를 다시 탄다 해도 마진을 고려할 때 상당 물량을 '중국제'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는 단기간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지난해 철강 산업의 과잉 생산 규모를 6억4000만톤으로 추정했는데, 2028년에는 이 규모가 7억4500만톤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2028년까지 글로벌 차원에서 에틸렌 약 2800만톤, 프로필렌 약 1800만톤 규모의 신규 증설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공급과잉의 진원지에는 모두 중국이 있는 셈이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사실상 '산업의 쌀'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그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양대 업계가 부진에 빠질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 건설, 유통 등 전 산업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과 지원책이 거론되는 이유다. 석유화학업계는 총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나프타분해설비) 생산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철강업계에는 K스틸법 등을 통한 지원이 거론되고 있다.
'산업의 쌀'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본원적 경쟁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스페셜티로 포트폴리오 전환이 이뤄져하는 이유다. 물량 대결로는 중국 업체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을 재빨리 선점해야 한다는 얘기다.
AI(인공지능) 산업은 이같은 측면에서 국내 석유화학 및 철강업계의 매력적인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만 봐도 각종 철강제와 석유화학 제품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한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 규모는 올해 69억9000만달러(약 10조원)에서 2031년 146억3000만달러(약 22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철강 모두 공통된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왔는데 AI 산업에도 각종 화학제품과 철강재가 사용될 수밖에 없기에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라며 "과거와 달리 새로운 제품을 재빨리 발굴하고, 고객 맞춤형 공급을 추진하는 등의 대응 전략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