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세종시 육군 종합보급창내 야전용 간이 지휘소에 들어서자 한쪽 모니터에 '육군 마이크로그리드'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바로 옆 대형 화면에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이 집계한 각 설비의 운전상태와 전력 흐름이 녹색 선과 수치로 실시간 표시됐다.
지휘소 밖에 배치된 이동형 태양광 발전설비와 차량형 에너지저장장치(ESS), 디젤발전기가 하나의 이동형 배전체계로 연결돼 전기를 생산·저장·공급하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화면이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일정 지역 안에서 분산된 에너지원을 연결해 전력을 생산·저장·소비하는 소규모 전력망이다. 평시에는 외부 전력망과 연결해 운용하다가 단전이나 재난이 발생하면 독립된 전력망으로 전환할 수 있다.
태양광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체계는 아니다. 낮에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ESS에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하고, 발전량이나 저장 전력이 부족하면 디젤발전기가 이를 보완한다. 여러 전원을 겹쳐 운용해 한쪽에 문제가 생겨도 전력 공급을 이어가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군에 이동형 마이크로그리드가 필수적인 이유는 고정된 전력망에서 떨어진 작전지역에 신속하게 전력 공급체계를 다시 설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시 중에는 상당수 부대가 기존 주둔지를 떠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드론·무인체계·감시장비 등 전기를 필요로 하는 장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다.

육군이 이날 시연한 이동형 설비는 전남 장성 상무대(군사 교육 및 훈련을 담당하는 시설에 구축되는 육군 최초 마이크로그리드에서 본격적으로 실증된다. 이동형 설비에는 15킬로와트(kW)급 태양광 발전설비 2대와 110킬로와트아워(kWh)급 차량형 ESS 2대, 100kW급 차량형 디젤발전기 2대, 200kW급 배전체계가 포함된다. 육군은 이들 장비를 험지에서도 운용하고 현장 도착 후 100분 이내에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무대에는 이동형 설비와 함께 태양광 3.015메가와트(MW), ESS 9.76메가와트아워(MWh), 디젤발전기 4MW 규모의 '고정형 설비'도 들어선다. 고정형 마이크로그리드는 평시에 한국전력 계통과 연결돼 태양광 발전량과 ESS 충·방전을 조절한다.
외부 전력이 차단되면 0.1초 이내에 독립운전으로 전환하고, 시설별 중요도에 따라 전력을 선택적으로 공급해 핵심 시설을 72시간 이상 운영한다. 주둔지에서는 고정형 설비를 이용하고, 부대가 이동하면 차량형 ESS와 발전·배전설비를 작전지역으로 옮겨 전력망을 다시 구성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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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이 2024년 캘리포니아 포트 헌터 리겟에 태양광·배터리로 핵심 시설을 운영하는 기지형 마이크로그리드를 완공하는 등 군 마이크로그리드는 해외에서도 기지형과 야전형으로 나뉘어 발전하고 있다. 상무대에서 실증하는 이번 사업은 이동형·고정형 두 형태의 마이크로그리드 설비를 단일 플랫폼에서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육군은 "국방 전력망의 유연성과 즉응성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상무대 실증은 육군 차세대 에너지 정책의 첫 단계다. 육군은 전력원을 다변화하고 부대의 에너지 자립성을 높이는 한편, 기동장비의 전기·하이브리드화와 에너지 절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육군은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에서 단기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고, 중기에는 수소연료전지와 수소발전차량을 연결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초소형 모듈원자로(MMR)를 마이크로그리드의 전력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핵심기술 핵심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육군은 상무대에서 효과를 검증한 모델을 다른 부대로 확대할 방침이다.
상무대 마이크로그리드는 '국방 RE100(재생전력 사용 100%)' 시범사업과도 연계된다. 국방 RE100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계획에 맞춰 군부대의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전시에는 독립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높이고, 평시에는 재생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절감을 확대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하헌철 육군 군수참모부장(소장)은 "현대전에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력 확보는 전쟁 승리의 핵심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분산에너지 기반의 자립형 전력체계를 구축해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체계를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육군의 이같은 기술과 정책은 오는 10월 28~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머니투데이 주관 '스마트에너지플러스(SEP)' 행사 기간 중 '제3회 육군 에너지정책 포럼'에서 더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포럼에서는 고정·이동형 마이크로그리드 기술과 상무대 실증사업, 국방 RE100, 수소 등 차세대 에너지원의 군 적용 방향 등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