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소득수준·해외여행 대중화불구 '비현실적 규제' 목소리에 상향 검토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싱글인 직장인 A씨(여,33)는 올해 징검다리 설 연휴 때 따뜻한 동남아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 위해 몇달 전 일찌감치 예약을 해뒀다.
'디데이'만 손꼽아 기다리던 A씨는 해외여행객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면세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최근 친구들과 면세점을 찾은 A씨는 소위 '명품'으로 통하는 'P' 브랜드 핸드백에 눈이 꽂혔다.
가격은 거의 2000달러. 내국인의 면세점 구매한도인 3000달러보다는 작지만 입국시 면세한도인 40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다. 세관 문제로 머뭇거리자 잘생기기까지 한 매장 직원이 친절하게 '세관 피하는 법'을 알려줬다. 목적지인 외국에 도착하면 제품 포장을 다 뜯고 직접 메고 다니다가 한국에 갖고 들어올 때는 본인이 아닌 친구한테 맡기면 된다고 했다.
#직장인 A씨(남, 31)는 지난해 해외 출장 때 겪은 `루이비통 사건'을 떠올리면 지금도 속이 쓰리다. A씨는 장모님과 아내를 위해 80만 원대 루이비통 백 두개를 샀다. 남은 것은 공항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는 일이었다.
입국장 수하물 수취대에서 자신의 짐을 찾은 A씨는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루이비통 백 두개를 그 자리에서 꺼내 동행한 여자 동료들에게 각각 백을 하나씩 맡기고, 대신 세관대를 통과해줄 것을 부탁했다.
걱정 없이 의기양양 세관대를 먼저 통과한 A씨. 뒤돌아보니 자신의 루이비통 백을 하나씩 들고 있는 여자 동료들이 세관에 잡혀있는 게 아닌가. 뒤늦게 알고 보니 수하물 수취대 부근에 있던 '사복 감시요원들이 이미 A씨의 '모의'를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딱 걸린 A씨는 눈물을 삼키며 세금을 물어야 했다.
연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은 약 1500만명, 한국을 찾는 외국 여행객도 800여만 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내·외국인 이용하는 국내 면세점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입국시 면세한도는 400달러(44만원)에 불과하다. 이렇다보니 공항 세관대에서는 면세 400불 규정을 둘러싼 온갖 `해프닝'이 일어난다.
국내 면세점에 즐비한 명품 매장에서 가방 가격은 저렴한 게 100만원 안팎이고 보통은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수입화장품도 40만 원을 넘는 기능성 제품이 많다. 면세점에 400달러를 넘는 제품을 사서 다시 갖고 들어오면서 세관 신고를 하지 않으면 모두 400달러 규정을 어기고 `탈세범'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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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휴대품 면세한도는 지난 1979년 시행된 이후 30여 년 간 단 두 차례 상향됐다. 지난 1988년 기존 10만 원 이하에서 30만 원 이하로 상향됐고, 이후 1996년 미화 400달러 이하로 상향 조정된 후 16년째 그대로다. 현재 국민소득 규모와 해외여행객의 급증 추세를 감안하면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여행자들의 씀씀이가 과거와 달라진 것을 반영해 현실적인 수준으로 면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영선 관세청장도 나섰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명목 기준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하고, 해외여행객이 하루 10만 명을 넘어서면서 지금의 면세한도가 현실적인지 검토해 보라는 윤영선 관세청장의 지시가 있었다"며 "현재 면세 확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해외에서 면세한도 이상의 물건을 구입한 뒤 자진신고하거나 세관에 적발돼 관세가 부과된 건수는 총 10만751건으로 2009년에 비해 128%(5만6522건) 증가했다. 2009년에 59억3600만원에 그쳤던 여행자 휴대품에 대한 관세금액도 138억1300만원으로 1년 새 133%(78억7700만원) 급증했다.
이렇듯 면세한도 위반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행객들이 국내 면세점과 외국에서 사들이는 물품의 가격대를 현실적으로 고려해 잠재적인 탈세자 양산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한도 상향은 국민소득 뿐 아니라 조세정책, 해외동향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의 해외여행객 면세한도 상향 조정 추진에 대해 롯데, 신라 등 면세점 업계는 적극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현행 면세한도 400달러 규정이 상향 조정되면 소비심리 확대로 면세점 매출 증대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설립이 해외 관광객의 국내 쇼핑 편의를 도와 외화벌이를 확대하려는 취지 인만큼, 내국인은 400달러로 제한을 둬왔다"며 "내국인 한도가 상향되면 매출이 늘어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내국인 대상 면세점 업체들은 비현실적인 면세한도가 국내에서의 구매를 제한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면세점 관계자는 "비현실적인 면세한도로 오히려 외국에서 소비를 부추겨 여행수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제라도 현실화하겠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유통 전문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면세한도 평균은 500달러 수준"이라며 "국가별 소득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면세한도가 크게 낮다고 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분별한 해외명품 소비를 상징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도 면세한도를 당분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