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귀 막고 유통규제안 내놓은 서울시

[기자수첩]귀 막고 유통규제안 내놓은 서울시

반준환 기자
2013.03.21 06:26

"서울시 누가 이런 방안을 내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장바구니를 든 적이 없거나, 매일 외식하시는 분 아니라면 이런 발상이 나올 수 있나요. 당장 아이음식 장보기도 어려운 판에…. "

얼마전 만난 결혼 2년차 맞벌이 부부가 서울시의 유통 판매제한 품목발표를 본 후 쏟아낸 불만이다.

이 부부의 말처럼 서울시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에서 콩나물, 오이, 감자, 배추, 계란, 쇠고기 등 51개 생필품의 판매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후 소비자들의 항의가 서울시에 빗발치고 있다.

매일 먹는 식품까지 팔지 말라는 건 대형마트 문을 닫으란 얘기에 다름없다. 공휴일 대형마트 강제휴무까지는 인내했던 소비자들도 이번엔 제대로 뿔이 난 것 같다.

서울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소비자들 반발이 이처럼 거셀지 몰랐던 때문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서울시측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재래시장과 골목시장을 살리기 위한 권고차원"이라고 톤을 낮추는 모습이다.

정책을 입안한 서울시를 무턱대고 탓할 순 없다. 대형마트 공휴일 강제휴무를 도입했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시 공무원들도 "사라져가는 골목가게를 살려보자"는 의무감에서 밤을 새웠을 것이다.

문제는 과정이다. 서울시는 이번 정책을 만들기 위해 한국중소기업학회에 단일 연구용역을 주고, 이 결과를 토대로 최종안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중소기업학회가 그간 영업규제 도입을 위한 정책에 힘을 실어 왔다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이 있다. 연구진에는 학계에서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대형마트 철수론'을 외치는 이들이 포함됐다고 한다. "서울시의 연구용역이 짜 맞추기 식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서울시는 연구용역에서 골목상권 조사, 소비자 집단 인터뷰, 외부 전문가 등에 대한 면접을 진행했다고 설명했으나 정작 중요한 농가들의 입장을 들은 흔적은 희미하다. 51개 판매금지 품목에 야채, 수산물, 정육, 건어물 등 농어민에 관련된 것만 37개에 달한다.

정책 추진력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출발이다. 골목을 담보로 고속도로 격인 유통망을 끊는 건 하책중의 하책이다. "얼마 전 대형마트 납품을 위해 재배품목을 바꾸고, 수지 맞추기가 어려운 유기농법까지 도입했다"는 농민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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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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