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망생이다 <1>]톱모델 꿈꾸지만 현실은 냉혹…수백만원 들이고도 런웨이 못 서

# 3년전 다소 많은 나이에 꿈을 찾아 모델계에 입문한 한모씨(남·29).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한 그는 인턴으로 근무하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유명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수료 후 에이전시와 바로 계약을 하고 몇몇 패션쇼에도 섰다.
하지만 현재 한씨는 런웨이가 아닌 푸드 트럭에 올라 있다. 그는 "일이 점점 줄고 보수 지급도 제때 이뤄지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일이 없을 때는 빵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키작아도 할 수 있다(?)" 희망고문…수백만원 학원비에도 지망생 줄 서

모델은 화려한 직업이다. 큰 키와 늘씬한 바디라인, 작은 얼굴이 기본. 완벽한 비주얼을 갖춘 모델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만큼 모델을 꿈꾸는 지망생들도 매년 늘고 있다. 무조건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개성있는 비주얼이 각광받는 분위기도 모델 지망생이 증가하는 요인이다.
국내에서 모델이 되려면 사설 아카데미나 정규 대학에서 양성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모델선발대회 등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는 경우도 있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미리 학원을 다니며 준비한다. 국내 모델 아카데미는 20여곳. 이 중 DCM, 에스팀 등 대규모 에이전시를 갖춘 학원이 4~5곳이고 나머지는 사설 아카데미다. 최근에는 동덕여대, 대경대 등 2년제, 4년제 대학과 대학 내 교육 기관으로 확대되고 있다.
키 170cm에 마른 몸과 작은 얼굴의 소유자인 김모씨(여·21)는 지난해 300만원에 달하는 3개월 모델 정규과정을 등록했다. 학원비를 내기 전에 김씨가 "모델이 되기엔 내 키가 좀 작지 않냐"고 상담했지만 아카데미측은 "키가 작지만 비율이 좋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정규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김씨는 런웨이에 1번도 오르지 못했다. 키가 작을 뿐더러 김씨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쇼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모델 지망생 이모씨(남·20)는 "모델 아카데미들이 돈에 눈이 멀어 모델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친구들까지 막무가내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아무리 키가 작은 학생이라도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원들의 상술에 언제 올지 모르는 데뷔무대를 꿈꾸며 희망고문을 받고 있는 지망생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톱모델=하늘의 별따기'…화려한 런웨이 뒤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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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카데미나 대학 정규과정을 수료했다고 모두에게 데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순희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는 "모델과 졸업생 전원이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업을 지속해 지도자가 되거나 스타일리스트, 패션 산업 종사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아카데미에서는 단기 속성으로 모델 과정을 수료할 수 있지만, 다양한 커리큘럼이 구성된 정규 대학에서 교육받으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폭넓고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윤주, 한혜진 등처럼 해외무대에 서는 톱모델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조명이 쏟아지는 화려한 런웨이에 서려면 뼈를 깎는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모델이 된 난 후에도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 외면받기 십상이다. 더 어린 나이에 데뷔해 결혼 후에도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기본이다.
전문가들은 모델의 화려함만 보고 철저한 준비없이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신상원 대경대학교 모델과 교수는 "신체적인 조건은 기본이고 연기, 음악, 춤 등 전반적인 표현 예술에 대한 다양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화려한 런웨이 뒤에서 펼쳐지는 전쟁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장기 플랜을 세우고 진지한 자세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뷔만 하면 고생 끝(?)…1년에 1000만원도 못버는 냉혹한 현실

모델로 데뷔했다고 끝이 아니다. 런웨이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뿐더러 수입도 충분치 않아 생활고를 겪는 모델도 많다. 국세청이 집계한 2012년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현황 및 사업소득 연말정산 신고현황에 따르면 모델(6918명)의 평균 수입은 940만원으로 1000만원에도 못미쳤다.
업계에 따르면 신인모델의 경우 쇼 한번에 10만~15만원선의 모델료를 받는다. 이들은 "나중에 한꺼번에 주겠다"는 에이전시의 말만 믿고 입금을 기다리다 결국 일당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바로 수당을 지급하는 '현장 페이' 시스템을 적용하는 곳이 늘었지만 아직도 일만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모델들이 많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모델들은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모델을 그만두고 다른 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DJ 겸 패션쇼 음악 디렉터나 아카데미 강사 등으로 패션업계에서 활동하는 경우 동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모델은 수명이 짧은데다 오랜 기다림을 대비해야 하는 직업"이라며 "배우나 가수, 방송인 등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대중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톱모델에게만 열려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