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롯데그룹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롯데라는 기업의 저력이다. 2014년 12월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부터, 경영 비리 수사,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뇌물 혐의 수사, 신동빈 회장 기소와 재판,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까지. 2년여간 온갖 악재에 휩싸였지만 그룹 위상은 오히려 높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자산 규모(이하 비금융 기준)는 2015년(이하 직전 회계연도 기준) 93.4조원에서 2017년 110.8조원으로 2년만에 18.6% 늘어났다. 같은 기간 롯데그룹의 매출은 23.0%, 당기순이익은 77.5% 늘었다. 재계 순위는 5위로 동일하지만 4위 LG와의 자산 격차는 12.1조원에서 1.5조원으로 줄었고, 6위 포스코와의 차이는 8.9조원에서 32.6조원으로 크게 벌렸다.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실적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롯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통 분야는 지난 2년여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형마트 사업을 하는 롯데마트는 사드 보복 조치 피해 기업의 상징 처럼돼 있지만 실상은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 약화가 더 아프다. 업계 1위인 이마트가 소비 침체와 오프라인 고객 이탈 속에서도 피코크 노브랜드 등 자체 브랜드 상품, 온라인 시장, 창고형할인마트 등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사이 롯데마트는 이들 분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조원 돌파를 호언했던 온라인 매출은 미미한 성장에 그쳤고, 창고형할인마트는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신규 출점을 중단한 상태다. 자체 브랜드 제품도 인지도 등에서 경쟁사 대비 열세다.
급성장하고 있는 편의점 사업도 마찬가지다. 롯데의 세븐일레븐은 2013년 말 점포수가 7160개로 업계 2위 GS25 7774개에 614개 뒤지며 '빅3'를 형성했지만 3년여가 지난 올해 4월말 현재는 점포수가 8764개로 2위 GS25(1만1422개)와의 격차가 2658개까지 벌어졌다. 편의점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H&B(헬스&뷰티)스토어도 4월말 현재 점포를 92개까지 늘렸지만 1위 CJ그룹 올리브영 868개에는 턱없이 못미친다. 침체된 유통시장에서 그나마 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들에서 유통업계 1위 롯데가 선도하는 모습이 안 보이는 셈이다. 구조적인 침체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할 시기에 경영진이 내우외환에 발이 묶이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롯데에 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전근대적 방식의 기업 운영으로 문제가 될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지난해 10월 부터 추진하고 있는 준법 경영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뉴 롯데'로의 변신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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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우리 사회와 정치권, 검찰도 기업의 역할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대기업의 사정이 그나마 낫다고 하지만 치열한 기업 환경을 보면 또 그렇지 않다. 시쳇말로 훅 갈 수 있다. 롯데 유통 부문의 부진은 이런 우려를 말해준다. 새 정부도 고칠 것은 고치되 기업들이 안심하고 경영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도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