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 지안의 비석이 가장 오래된 고구려 비석이라는 내용을 담은 학술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었지만, 그 건립 연대가 광개토대왕, 장수왕 대로 엇갈리고 있다.
중국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고구려가 중국 고이족이 세운 국가라고 서술되는 등 고구려를 중국의 영토로 포함시키는 작업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고, 발해는 그 존재 자체를 지우고 있다. 이제라도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일회성의 성토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이외에 5세기 이전에 문자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자료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발해 고구려만이 아니라 한반도 깊숙한 곳까지 정확한 역사적 실체 규명이 안 된 부분이 많다.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한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해 문헌 기록으로는 더 이상 나올 것이 없고, 고고발굴 자료를 통해서 불분명한 실체와 끊어진 역사의 고리를 엮어나갈 수 있다.
전국 개발현장에서 그 동안 역사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역사적 실마리가 밝혀지고 있다. 풍납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성백제의 궁궐터 유적이, 강화도 도로 건설부지에서 고려궁지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굴되는 등 사라지고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우리의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렇듯 매장문화재는 기록으로 접할 수 없는 역사적 실체를 담고 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구가 국경지역 고구려 유물과 어떻게 같고 중국 것과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등을 밝혀서 동북공정 같은 부당한 역사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를 축적하여야 한다.
그러나 매장문화재는 발굴해보지 않고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개발과정에서 그 존재가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 발굴에 따른 개발지연 및 발굴비 부담으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가 있던 지린성에 지안박물관을 세워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한강변 아차산에서 대량 발굴된 고구려 유적은 택지개발공사로 훼손되었다.
우선 발굴부담을 피하기 위한 고의적 유적 훼손, 개발지연에 따른 비용 증가로 발굴된 유구가 제대로 된 학술세미나 등의 여론수렴 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매장문화재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개발형태를 조정할 수 있도록 지표 및 발굴조사 시기를 개발사업예정지 지정 또는 사업계획 수립 착수 시점으로 앞당겨야 한다. 지표조사공영제와 선(先)발굴제도를 실시하여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재정비계획 지역, 역사성 규명이 중요한 지역, 古都 등은 공공이 선행적으로 조사하고 발굴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독자들의 PICK!
아울러 공공의 과도한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민간의 발굴비용 부담을 줄여나가야 한다. 발굴비용 사후정산제를 도입하여, 전체 보존 또는 개발계획의 상당부분을 축소할 경우는 공공이 부담하고, 보존 필요성이 없거나 발굴지의 일부만 보존하고 개발을 허가하는 경우 개발자가 부담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막대한 발굴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가 재정에서 발굴 예산을 확보하는 노력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통한 직·간접적 재원 확충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공공의 비용 부담없이 도로, 공원용지 등을 확보하는 수단인 기부채납제도를 개선하여, 주요 유구를 발굴하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비용도 기부채납의 한 범주로 인정하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재개발 재건축에서 용적률을 높여주고 그 대신 소형 및 임대주택을 짓도록 하는 공공기여제도를 활용하여, 개발자가 짓도록 되어있는 소형주택의 일정 비율을 문화재 발굴 및 보존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대체하거나, 그 일부를 중요 유적 보존을 위해 이주해야하는 주민 이주지로 할당하는 방안도 발굴에 소요되는 보상비를 줄일 수 있다.
공공의 재정 지출없이 문화재 보존재원을 마련하는 좀 더 적극적인 제도로서 용적률거래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용적률거래제는 공공이 용적률을 높여서 개발사업을 허가할 경우, 개발자로 하여금 높여준 용적률증가액만큼 보존지역에서 규제받고 있는 용적률을 사오도록 하는 제도이다.
소유권 전체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받고 있는 용적률만 매입해서 재정 소요를 줄이는 용적률매입제 도입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뉴욕시, 시카고시 등에서는 문화재를 보전하고 개발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 지역의 개발권을 다른 지역에 팔 수 있도록 하는 개발권양도제를 활용하여 중요 역사문화자원 보전재원을 충당한다. 일본은 중요문화재 특별형 특정가구제도를 제정하여 중요문화재를 포함하는 가구의 재개발에 대해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역사적 건조물을 보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발굴제도 개선, 다양한 직·간접적 재원확보 수단의 활용 등을 통해 각종 개발과 매장문화재의 역사적 의미 규명 작업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축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