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전철 시대 선언

[기고]경전철 시대 선언

이용재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2013.08.12 06:01
이용재 중앙대 교수
이용재 중앙대 교수

지난 7월 2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규모 경전철 건설사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향후 10년 동안 경전철 9개 노선을 건설하고 지하철 9호선을 연장하는 8조5000억짜리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경전철 시대 선언’은 이미 2008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도시철도 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이번 발표내용은 단순히 이 기본계획에 대한 5년 단위 재정비계획의 내용이라 밝히고 있지만 담겨진 내용은 서울시 대중교통체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엄청난 선언이다.

이 종합발전방안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현재 62%에 머물고 있는 철도 서비스지역이 72%로 확대되어 대중교통분담률이 75%로 향상되고, 서울시내 어디에서나 도보로 10분이면 철도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출퇴근시간 도로 혼잡비용을 10% 단축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가 ‘버스 중심’에서 ‘철도 중심’으로 옮겨가는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줄곧 ‘토건종식’을 주장했던 박 시장이 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왜 자신의 정치철학과는 전혀 동떨어진 정책을 선언했는지, 그것도 대한민국에서는 ‘혈세먹는 하마’ ‘텅텅 빈 ○○ 경전철’ 등 국민들의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경전철 사업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지, 서울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의아해하고 있다.

박 시장의 ‘경전철 시대 선언’의 배경에는 버스 대중교통체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서울시의 위험천만한 재정위기에 대한 근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수단은 지하철과 버스로 대변된다. 전체 통행량 중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통행량의 비율인 대중교통분담률은 64%에 이른다. 일본 도쿄의 89%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프랑스 파리의 67%, 영국 런던의 73%에 비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수치다. 그러나 대중교통분담에서 지하철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파리가 58%, 런던이 65%, 도쿄가 86%인 데 비하여 서울은 36%로 상대적으로 지하철의 비중이 낮고 버스 의존율이 매우 높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이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체계가 ‘철도 중심’의 대중교통체계에 비하여 결코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전체 대중교통 이용자 수는 늘지 않는 상황에서 버스에 대한 재정지원 예산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여년간 서울시의 대중교통 이용실태를 보면 버스 이용자는 줄고 지하철 이용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8년 전후부터 지하철 이용자가 버스 이용자 수를 추월한 이후 그 차이의 폭은 점차 커지고 있다. 물론 2004년 버스 준공영제를 기반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 버스 이용자의 수에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버스 이용자 수는 결코 늘지 않았다.

버스 노선과 운행수준의 결정은 서울시가 하고, 버스 운행은 민간업체가 실시토록 한 것이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버스 준공영제의 주요한 골자인데, 이 제도의 도입으로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3000억원에 가까운 재정적자 부담 또한 큰 걱정거리로 남게 되었다. 공공서비스와 운영 효율성의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가는 서울시로서는 해마다 늘어만 가는 버스 대중교통체계에 대한 재정지원 규모가 큰 골칫거리였고, 이는 동시에 박 시장을 괴롭혔을 것이다.

한편, 서울시 지하철 대중교통체계의 특징은 마치 부챗살처럼 도심의 지하철 노선밀도는 매우 높으나 도시 외곽으로 나갈수록 상대적으로 지하철 노선당 서비스지역(보행 10분거리 기준)이 넓어지는 경향이 있어 지하철 서비스의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1974년 1기 지하철시대 이후 2기 지하철시대와 2009년 지하철 9호선 건설까지 지하철 서비스 가능지역의 면적은 서울시 전체 면적의 62%에 해당하나 실제 지하철 분담률은 36%에 그치고 있어 제대로 된 간선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 운영적자 또한 버스 대중교통체계와 비슷한 매년 약 3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의 재정부담 측면에서 보면 버스나 지하철에 대한 재정지원 규모는 비슷한데 실제 지하철의 분담률은 36%이고 버스의 분담률이 28%이며, 해가 갈수록 버스의 분담률이 감소한다고 하면 서울시의 올바른 대중교통정책은 무엇인가?

지하철은 시간당 4만~6만명을 한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대용량 대중교통수단이며 도시에서 출퇴근 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친환경·친인간적이면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지하철 역세권은 부동산 가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선호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건설비와 운영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주로 대도시의 기간교통망에 제한하여 건설하고 있다. 주로 지하에 건설되기 때문에 km당 건설비가 1000억에서 1200억원이 든다. 운영비도 이에 비례하기 때문에 교통수요가 충분한 대도시의 간선교통축 외에는 건설하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루어진 서울시 대중교통망이 이미 그물처럼 촘촘히 설치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지하철의 이용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지하철 노선과의 연계교통에 문제가 있고 특히 미흡한 지하철의 지선체계는 환승의 불편을 초래하여 버스체계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38%에 해당되는 철도 소외지역은 대부분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지역은 개발밀도가 낮고, 주로 시민들의 주거지이기 때문에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박원순 시장의 ‘경전철 시대 선언’은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행복’을 바라는 정치적 도박이며, 서울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버스 중심’ 대중교통체계로부터 보다 편리한 ‘철도 중심’ 대중교통체계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필자의 입장에서는 박 시장이야말로 전임 이명박-오세훈 시장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토건사업을 본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토건업에 종사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번 경전철 사업을 통해 교통사업이 단순한 토건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복지를 실현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또한 서울시민과 땅의 가치를 배가하는 또 다른 차원의 복지사업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희망과 긍지로 남게 될 것이다.

충분히 숙고하고 고민하였던 사업이라고는 하나 서울시의 이번 경전철 투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전철 시민위원회가 결성되어 시민들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위원회를 통해 투자사업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요금제도, 재정지원 문제, 도시계획과 교통계획은 물론 버스·택시·자전거·보행 등 다른 연계교통수단과의 환승을 포함한 기능 보완성 및 중복성, 시행과정의 투명성 제고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경전철 사업이 서울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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