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힘내라, 아사다 마오!

[MT시평]힘내라, 아사다 마오!

진양곤 기자
2014.03.05 06:10

'IMF는 우리 잘못이었으니 그렇다 치자. 우리가 뭘 잘 못 했기에 이렇게 또 피가 말라야 하지?' 2008년의 봄은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만기가 임박한 회사채의 연장 협상을 위해 홍콩의 투자회사를 찾아 가는 길. 투덜거림 속에 도착한 첵랍콕 공항 전광판에는 홍콩 증시의 폭락을 알리는 붉은 글씨가 섬뜩했고, 멍한 눈길로 바라보는 택시 밖 빌딩숲은 자본주의의 모래성을 보는 듯 했다.

'여태 잘 해왔잖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나마 총괄 매니저가 한국계 여성이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크게 심호흡하고 기다리는데 회의실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역시 난 운이 좋다. 조금 전의 심호흡 덕분에 심장마비를 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시에 전액 상환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파산 신청합니다." 협상의 여지를 잘라버리는 그녀의 첫마디에 살짝 화가 났지만 빚진 죄인이라 했던가. 모멸감을 견뎌가며 간청도 해보고 항의도 하다가 마침내 나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야 말았다. "한국 사람끼리 너무한 거 아니에요?"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 "한국 사람들과 만나면 가장 기분 나쁜 것이 비즈니스 하면서 민족을 얘기하는 거예요." 가슴이 뻥 뚫린듯한 허탈한 기분. 협상의 결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머리를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회사채를 어렵사리 상환함으로써 일은 종결했으나 여전히 꺼림칙한 게 하나 남았으니, 다급해진 순간 나의 어떤 본능이 '한국사람끼리'라는 감정에 호소하게 만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소치 동계 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신문에서 나는 그 답을 발견했다. 그 날 신문 1면에는 아사다 마오가 엉덩방아를 찧는 사진과 김연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함께 실려 있었다. 상대방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집단화하는 모습을 신문에서 본 것이며, 마오의 꽈당 사진에 통쾌해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몇 장을 넘기니 소니가 사일로 이펙트 때문에 망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알다시피 사일로 이펙트는 부서 이기주의 혹은 끼리끼리 뭉치며 외부에 배타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소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논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언론에 묻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마오의 모습과 행복한 연아의 모습을 대비한 사진이 국민을 사일로에 몰아넣는 건 아닌지를.

수십년간 우리가 추종해온 효율성 지상주의와 경쟁원리는 집단주의와 결합하여 우리의 의식 속에 피아의 구분 짓기를 일상화시켰다. 우리와 너희, 우리 회사와 너희 회사, 한국인과 외국인처럼 말이다. 우리학교, 우리회사, 우리나라처럼,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우리'라는 일상적 호칭 속 아름다운 공동체 의식은 올바르게 확장되지 못한 채 패거리에 머물고 말았으며, 이러한 문화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구분 짓기를 통한 경쟁은 우리를 편협한 사고로 인도하며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된다. 학연과 지연이 그러하고 애국심으로 포장된 국수주의가 그러하다.

피아를 집단화시켜 구분 짓고 '끼리'의 문화와 경쟁의 논리로 고도성장을 해온 게 지난 시절이었다면, 피아를 넘어 범세계적이며 우주적인 시각에서 공감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오직 미래의 '나'와의 경쟁만 요구될 뿐이며 '우리와 너희'가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어야 한다. 즉, 우리 사회는 인류애에 기초한 공감과 배려가 숨쉬는 사회로 진화하여야 하며, 진정한 글로벌화는 이러한 진화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라 믿기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딛고 올림픽에 출전 하였으나 연거푸 넘어진 아사다 마오에게 뒤늦게나마 '파이팅!'을 외쳐보는 것이다.

우리가 아사다 마오의 꽈당과 박승희의 꽈당에 함께 가슴 아파할 줄 알고, 여러 번 상대방을 넘어뜨린 영국 선수에게 악성 댓글과 테러성 메일이 아닌 위로의 글을 남기는 데 익숙해진다면 그 때 우리는 이미 세계의 리더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선진화는 숫자로 입증되는 게 아니라 품격으로 드러나는 것이니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많이들 알고 있는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새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끼리'의 문화와 국가주의의 알을 깨고 세계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언젠가는 '별에서 온 그대'를 맞이할 수도 있으며, 그게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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