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가의 일

[시평] 국가의 일

이항우 기자
2014.05.07 07:22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주가 다 되어가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에 그간 하루도 울지 않고 보낸 날이 없다. 오늘도 합동분향소에는 전국 각지 수만 수십만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안타까움과 원망과 분노의 발걸음이다.

‘전원구조’라는 언론의 오보만 없었더라면, 탈출하라는 선장의 안내 방송만 있었더라면, 출동한 해경이 배에 뛰어들어 승객들을 구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생사의 일분일초를 다투는 시간에 해경이 해군과 민간 잠수부의 투입을 막지 않고 오로지 인명 구조에 온 힘을 다했더라면,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른들의 구조를 믿고 기다렸던 아이들, 생때같은 아들딸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터질 듯 아프다.

수백 명의 승객을 침몰하는 배에 가둔 채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의 행동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임금의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을 대거 고용한 청해진해운에 안전운항과 사고대처를 바란다는 것은 애초부터 헛된 꿈일 것이다.

여객선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규제완화 때문에 세월호의 수명이 10여년 더 연장된 현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다. 선박검사를 위탁받은 한국선급의 역대 회장과 여객선 안전운항관리를 책임진 한국해운조합의 역대 이사장의 80퍼센트 가량이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참사의 배경에는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와 해양 관련단체의 유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잘못과 과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련자들을 희생양 삼아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일부 고위 공직자가 이번 사고의 대처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일반 시민의 공분에 불을 지르고도 남는 것이었다. 송영철 안행부 국장은 팽목항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컵라면에 계란을 풀어먹은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재난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총리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국가의 일'이라는 책에서,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국민의 복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왕이나 정치가 혹은 정치철학자들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국가의 부는 통치자들에 속한 것이고 국민의 복지보다는 전쟁이나 통치자들의 권세를 높이는데 사용되는 것이며, 애국은 국민들에 대한 헌신보다는 통치자에 대한 충성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을 18세기 이전의 절대 왕정국가로 되돌리려는 고위 공직자와 최고 권력자의 이러한 언행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

시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도 아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무능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합동분양소에서 유족이 아닌 일반 조문객을 마치 유족인양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어이없음’이라 하지 않을 시민은 많지 않다. 장관이나 총리를 내세우거나 국무위원들 앞에서 마지못해 사과하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을 인내해줄 시민도 많지 않다.

더 이상 대통령은 ‘관피아’ 척결이니 국가개조니 하며 유체이탈의 심판자 위치에 서있을 입장이 못 된다. 애초부터 구조할 마음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이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국가가 왜 존재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천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편집국 천상희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