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MT시평]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진양곤 기자
2014.05.16 05:10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오네, 떠나가 버린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 그 사람,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 떠나갔다네… (중략) … 울어 봐도 오지 않네, 불러 봐도 대답 없네, 흙 속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네." -휘버스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中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벗들과 울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꿈·희망·우정·의리 같은 단어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장례식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낯설었다. 느닷없는 이별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울어 봐도 오지 않고 불러 봐도 대답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여린 가슴들에게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가르쳤다. 그해 여름은 그래서 아팠다.

잊혀졌던 그 기억이, 그 노래가 화창한 어느 봄날 나를 다시 찾아왔다. 32년 만에 말이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지난 세월은 내게 자부심이었다. 가난을 극복했고, 독재와 싸워 이긴 그 역사 속에 나의 역사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부심이 한 번에 무너졌다. 폭압적인 독재에도 물러서지 않은 패기만만한 우리들이었는데, 죽어가는 아들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과연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는 한 건가 하는 자괴감. 그렇게 나의 자존감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나는 잊혀졌던 그 노래를 조용히 부르며 떠나간 아들, 딸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30년이 지나도 2014년의 아픈 봄을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 더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나의 기억이 아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불면의 밤들이 지나갔다.

감정에 눌렸던 나의 이성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보니 이렇게 삶은 또 지속되려나 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안전불감증,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 세모, 관피아, 부실한 위기관리 시스템.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주목하며 분노한다.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생명불감증'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시민은 국가와 계약을 했다. 내 권리 중 일부를 국가에 양도할 테니 국가는 나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이게 사회계약론의 골자다. 따라서 시민은 납세와 국방 등 국가가 원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동시에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현대의 확장된 복지국가의 이념을 들이댄다면 국가는 시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 국가는 단순히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 개선과 재발 방지를 넘어 나라의 기본 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배려 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 국가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 그것이 국가의 첫 번째 의무다. 이러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확신이 모여 국력이 되는 것이며, 국격은 그러한 국가에 소속된 시민들의 자부심이 발현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전투를 공부하다 두 가지 사실에 감동했다고 한다. 로마가 풍전등화의 위기에도 17세 이하 미성년자와 가진 게 자식뿐인 무산자계층은 징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은 미래의 기둥이며 희망이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의무임을 로마는 일찍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전의 로마인들이 지킨 소중한 가치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한 것인가라는 절망적 질문에 이제 국가가 행동으로 확실히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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