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들어가긴 쉽지만 퇴로가 없는 '괘형'(掛形), 새정치聯의 선택

1597년 9월16일(음력) 오전 6시30분, 진도와 해남 사이 좁은 수로. 조류는 초속 2m 이상의 속도로 북서쪽을 향해 흘렀다. 날렵한 모양의 왜선 세키부네(關船) 133척이 조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해협에 들어섰다.
판옥선 13척이 일자로 늘어선 채 이들을 맞았다. 오전 8시, 양쪽의 거리가 250m쯤 됐을 때 판옥선의 현자총통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포탄이 쏟아졌고 왜선들이 차례로 격파됐다. 왜선들은 조총의 유효 사정거리인 50m까지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 가까이 가기도 전에 포탄에 맞아 수장됐다.
오전 10시10분, 조류가 초속 4m 수준으로 빨라졌다. 바닥이 V자 모양으로 좁은 왜선들이 조류에 밀리면서 진형이 흐트러졌다. 선회를 시도하던 일부 왜선이 다른 배와 엉키기면서 진형은 더욱 엉망이 됐다.
오후 12시21분, 조류가 남동 방향으로 급변했다. 오후 2시40분, 조류는 초당 2.7m까지 빨라졌다. 왜선들은 조류에 밀려 판옥선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오후 3시, 조류의 속도는 무려 초속 5m까지 치솟았다. 바람도 북풍으로 바뀌었다. 판옥선에서 불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왜선 함대 전체로 퍼져나갔다.
최단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영화 '명량'.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된 '명량대첩'을 당시 실제 조류의 변화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은 2010년 수평 초음파 유속계를 이용해 400여년 전 그날 울돌목의 조류 변화를 추정했다.
당시 전투에서 격침된 왜선은 31척. 반면 조선 판옥선은 단 한척도 파괴되지 않았다. 13척이 133척을 상대로 거둔 수수께끼 같은 전과다.
이 수수께끼의 답은 조류와 지형, 사정거리에 있다. 왜선은 바닥이 좁아 울돌목의 빠른 조류에 취약했다. 또 울돌목은 이런 배 133척이 선회하며 동시에 진형을 유지하기엔 너무 좁았다. 게다가 조선의 현자총통은 유효 사정거리가 250m에 달했다. 왜군의 주력무기인 조총의 무려 5배다. 이순신 장군은 사정거리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100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지휘선을 집중 타격했다. 그가 이룬 '23전 23승' 신화의 비결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의 비범함은 그 탁월한 '위치선정 능력'에 있었다. 그는 늘 유리한 유치에서 싸웠다. '싸울 곳'과 '물러설 곳'을 가리는 능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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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큰 상처를 입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수사권·기소권은 커녕 특검 추천권까지 양보한 탓이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가 더 이상 유리한 '전장'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터다. 7·30 재보선에서 패했고, 교황 방한은 임박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한가지를 간과했다. '퇴로'가 없다는 것. 의원총회는 "다시 협상할 것"을 결의했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의 지형을 통형(通形) 지형(支形) 애형(隘形) 험형(險形) 원형(遠形), 그리고 괘형(掛形) 6가지로 나눴다. 이 가운데 '괘형'은 들어가긴 쉽지만 되돌아 나오긴 어려운 곳이다. 적이 대비하고 있으면 이기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인 곳이다. 일단 여기 들어가면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수 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괘형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