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유민아빠'와 난장판 유치원, 그리고 청와대

[이슈 인사이트] '유민아빠'와 난장판 유치원, 그리고 청와대

이상배 기자
2014.08.24 16:08

[the300] '정당성의 3대 원칙': 공정성, 일관성, 상호성···강자가 약자의 말 들어준다는 믿음 있어야

#1. 유치원 교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교사 스텔라가 수업 중인 교실에서 한 여자아이는 교실을 가로질러 옆으로 재주넘기를 했다. 한 남자아이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사실상 교사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이 와중에도 교사 스텔라는 한 여자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여자아이에 가려 스텔라를 볼 수 없었다. 나머지 아이들 중 누구도 스텔라에 관심이 없었고, 스텔라 역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 한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시간. 교사는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은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맨 앞에 앉은 아이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교사는 즉시 팔을 뻗어 그 아이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교사는 그 아이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국 버지니아대 커리 교육대학원의 로버트 피안타(Robert C. Pianta) 학장과 브리짓 함르(Bridget K. Hamre) 교수가 연구를 위해 촬영한 영상이다. 쉽게 말해 '수업을 엉망으로 만드는 방법'의 사례들이다.

이 영상들은 지극히 평범한 지역의 평범한 유치원과 학교에서 촬영됐다. 학생들이 문제아들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교사의 행동'이다.

교사는 그들이 보인 행동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학생들은 언제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교사가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권위에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자신의 신작 '다윗과 골리앗'에서 광범위한 취재와 연구를 토대로 뽑아낸 '정당성의 3대 원칙'을 소개했다.

첫째는 '공정성'이다. 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일관성'이다. 항상 예측가능한 원칙에 따라야 한다. 셋째는 '상호성'이다. 누구든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럴 때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강자가 약자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이 정당성의 원칙들을 지켜야 한다고 글래드웰은 역설한다.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그 모범적인 사례다.

세월호 유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이 40일을 넘어섰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김씨는 지난 22일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수액을 맞았지만 음식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앞서 '유민 아빠'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거절했다.

지난 22일부터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 100여명이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수사권·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들은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한 채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박 대통령이 유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정병국·황영철·정미경 의원 등은 박 대통령이 '유민 아빠'의 병실을 찾아가고 유족들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최소한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당성의 3대 원칙'은 때론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상호성'을 지키면 '일관성'이 훼손되기도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모든 사고의 희생자 가족들을 대통령이 다 만나주는 건 쉽지 않다. 청와대의 고민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태만과 무능 속에 무려 300여명의 소중한 목숨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희생된 사건이 예외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예외적일까? 지금은 '상호성'이 아쉬운 때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