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이후드'를 보러 서울 압구정 CGV에 갔다. 직원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출구안내를 하겠단다. 작품을 위해 헌신한 그 누군가의 이름이 소개되는 3분여를 함께 지켜봐주자는 것이리라. 이것이 문화며 품격이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예술·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CGV뮤비꼴라쥬는 단 몇 명의 관객만을 위해 필름을 돌린다.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은 다를 것이나 문화를 지향하는 CJ의 진정성에 대한 필자의 긍정적 판단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사소한 모습들에서 근거한다.
필자는 7년 전 일 때문에 S은행과 거래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와 오랜 기간 거래한 그 은행의 신임 지점장은 대출만기가 되자 대출을 모두 상환하라고 했다. 거래하면서 단 하루의 연체도 없었기에 연장될 것이라 예상한 회사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한데다 대주주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란다. 신임 지점장이 회사 현장을 파악하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대주주인 필자와 차 한 잔이라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려 했다면 섭섭함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대출상환 통보조차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회사는 24시간 내내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판단은 논박 가능하나 편견은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적금을 깨서 바로 대출을 상환했다. 그리고 다시는 거래를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현장을 외면한 S은행에 대한 소시민의 복수는 그렇게 시작되어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진다. 물론 그 은행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겠지만.
연말, 특정지역 편의점의 제품별 적정 보유량을 예측하고자 한다면 숫자와 통계가 아니라 현장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냥 감으로 안다. 공장에 불이 나면 어찌할 것인가? 그 공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현장책임자로 임명한 후 모두가 그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뭐가 더 중요한지,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를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주말을 경마장에서 보내는 대기업 임원과 아들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식당일을 하는 아줌마 중 누구에게 대출해주는 게 나을까." 은행의 대출조견표는 대기업 임원이라 말하겠지만 현장이 내린 답은 식당아줌마다. 이렇듯 "답은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는 말은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대단히 유효적절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도 필요하거니와 권위의 자발적 해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다. "내가 그건 잘 안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필자는 경계한다. 그 말은 도그마가 되어버린 권위를 함축하고 있음은 물론, 확증편향의 오류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수능문제 오류에 대해 "최근 지구가 돌고 있음이 밝혀졌지만 교과서는 천동설이라 적고 있으므로 태양이 돈다고 말하는 게 답이다"라는 것처럼 들린 교육평가원의 발표, 단통법으로 인한 휴대폰시장의 혼란, 브레이크 없는 전세대란 등 우리는 도처에서 현장을 외면한 결정으로 인한 폐해들을 목도한다. 지표가 그 무엇을 말하든, 자본주의의 현장인 시장에서는 한숨마저 말라가는 게 현실이다. 위기감과 혼란이 시장을 엄습하는 이러한 때에 정치인이든 관료든, 국가지도자들의 지성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그 무엇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판단해달라는 것이며, 그들의 가슴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달라는 것이다. 권위를 자발적으로 해제한 채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는 말과 함께 10만원을 남기고 자살한 독거노인의 목소리도 들릴 것이며 "이사 갈 곳이 없다"는 서민의 목소리도, "더 이상 희망마저 안 보인다"며 좌절하는 기업인의 목소리도 온전히 들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