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까짜 마마(러시아어로 엄마란 뜻)를 만났다. 지난 달 30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방한한 연해주 한글교육센터 학생과 교사 48명이 서울 창경궁을 둘러보러온 3일이었다.
사회적기업 바리의꿈 된장, 청국장을 사면서 받아 보는 소식지에서 까짜 마마 이야기를 읽었던 터라 반갑게 인사했더니, 그는 “나를 알아요?”하고 의아하게 물었다. 여차저차 이어진 설명을 듣자 63세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소녀처럼 팔짱을 꼈다. “다음에 볼 땐 내가 꼭 기억할거야.”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까짜 마마는 1998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까짜 마마의 할아버지는 77년 전 소련 정부로부터 ‘일본인 첩자’란 누명을 쓰고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연해주 고려인 18만 명 중 한 명이었다.
고려인 특유의 근면함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자리 잡았던 그의 가족은 소련 붕괴 후 격변 속을 겪은 후 다시 뿌리를 찾아 연해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재정착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도 동쪽 끝자락인 연해주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나이든 여자가 일할 만한 직장은 없었다. 많은 고려인들이 그랬듯, 까짜 마마도 중국 시장에 나가 일했다.
만약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과 사회적기업 바리의꿈이 청국장 공장, 유기농 콩 농장을 세워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까짜 마마와 가족 대부분이 지금껏 중국, 한국으로 밥벌이하러 나가 제각각 흩어져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아마 고된 삶이었을 것이다. 중국어,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고려인 3세대들은 러시아 밖으로 나가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3D업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으므로.
까짜 마마와 함께 방한한 손녀 야나는 고려인 4세대다. 15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기 삶에 대해선 세상을 보는 눈과 방향성이 어른 못잖게 야물다. 야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배우기 때문에 한국이 성장한다”며 “커서 한국에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함께 온 16세 소년 막심은 엄마가 한국에서 용역 일을 한다. 엄마가 한국으로 와 함께 살자고 했지만 막심은 “지금은 한국 가면 바보 된다”고 거절했다. “한국어 배워서 가겠다”면서 말이다. 막심은 연해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5점 만점에 평균 4.8~5점의 성적을 올리는 우등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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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희망이다. 한국어를 배울 기회는 곧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다.
고려인 이주150주년 기념사업 한국추진위원회의 김윤령 사무국장은 “중국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문화 정책 때문에 조선족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지만 러시아엔 그런 정책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과 러시아어 이중언어를 쓸 수 있다면 부모세대와 달리 3D업종을 벗어나 무역, 통역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 쓰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면 누구나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경희대 대학생들은 벌써 5년째 연해주 고려인 아이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벌였다. 자원봉사는 보름 안팎 짧게, 혹은 반년 남짓 길게 갈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유엔미래보고서의 예측대로 지구 온난화로 러시아가 2035년쯤엔 식량 수출 대국이 된다면 막심, 야나 같은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연대(連帶)란,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된 범위가 넓을 수록 힘이 세지는 법. 까짜 마마네, 막심네 같은 고려인과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