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를 포함한 국민대타협기구에서 개혁의 기본 방식이 합의됨으로써 공무원연금개혁이 진전되고 있다. 최근 정치적 혼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일정대로 해외를 순방하고 있어서 공무원연금개혁 역시 예정대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연금개혁은 공무원의 연금수준을 삭감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다가 빼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개혁을 추진해야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연금을 삭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공무원연금의 개혁은 진전이 어렵고 성과도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하는 것은 이번의 개혁이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복지제도들은 거의 권위주의적 정권 하에서 도입되었다. 독재정권들은 복지정책을 국민의 복지보다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이용하였다. 이에 따라 복지혜택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세력인 공무원-군인-교사들에게 특권으로 제공되었다. 복지제도가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민주 정부들은 일부 계층의 충성심보다는 전 국민의 지지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복지제도 역시 모든 국민에게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의 복지제도는 특정 계층들의 특권에서 전 국민의 권리로 전환되고 있다.
전 국민의 권리로서 복지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복지제도가 모든 국민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모든 국민이 하나의 복지제도에 통합된다는 점이다. 통합된 복지제도 하에서는 모든 사회 계층이 하나의 자격으로 연대할 수 있게 된다. 이제도에서는 계층 간 급여의 차이는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복지제도가 사회 계층 간의 불평등과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이루어진 주요한 복지개혁들은 이러한 두 가지 길을 추구해왔다. 부유한 특정 계층에게 혜택을 주던 사회보험이 모든 국민(건강보험)과 모든 근로자(고용보험)의 제도로 확대되었다. 400개 이상으로 갈라져 있던 의료보험도 단일한 건강보험으로 통합되었다. 공적연금제도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연금제도는 전체 경제활동인구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제도로 성장하였고 국민연금제도에서 불가피하게 배제된 사람들은 기초연금을 통해 최소한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달리 공적연금은 여전히 세 개의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으로 분리되어 있어 구래의 특권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공무원 연금의 평균급여액이 월 219만원이었지만, 국민연금의 경우 20년 이상 가입자의 경우 월 84만원이었고, 전체 가입자의 월 평균 급여액은 약 30만원에 불과하였다. 공적연금이 사회 불평등의 대책이 아니라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연금제도의 개혁은 한국의 민주적 복지국가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무원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공적연금 내에서의 불평등을 시정하고 사회연대연금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노후소득이 지나치게 불안해지지 않게 하는 것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 목표가 한 제도에 담기기는 매우 어렵다. 이것은 현재의 공무원연금제도를 다층 구조로 전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공무원도 역시 기초연금을 수급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공무원연금의 일부는 국민연금과 완전히 통합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1층인 기초연금과 2층인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사회연대연금제도로 완성될 수 있다. 공무원연금의 3층은 민간의 퇴직연금부분으로 공무원들의 특수한 지위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금융기관보다는 공무원연금공단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 급여수준도 공무원 노조와 사용자인 정부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지국가는 국민 모두의 사회적 연대를 위해 정치적으로 조직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도 이의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