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교수(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가끔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 학생들에게 어떠한 직장에 가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대개 비슷한 대답을 한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대답에 이번엔 질문을 바꿔 어떤 조건의 회사에 가고 싶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항상 어김없다. 1등은 돈 많이 주는 회사, 2등은 복리후생이 좋고 정년이 보장된 회사, 3등은 힘들지 않고 여유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다.
그러면 돈 많이 주고, 정년을 보장받고, 일이 그리 힘들지 않은 회사가 세상에 있을까하고 질문하면 다들 한바탕 웃고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앞서 말한 조건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다수 청년들이 원하는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을 마주하다 보면 허전함이 느껴진다.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는 어려운 시기이기는 하지만, 인생에서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목표달성을 위해 졸업 후 어떠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빠져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좋은 조건의 회사들은 대부분 공채 시스템을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여러 기업들이 직무중심의 채용을 하고 있지만 주로 경력직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신입직원은 일부 전공만 제한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한국이 아직 직무를 중심으로 채용이 일어나는 노동시장 구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채시스템은 회사가 원하는 우수한 인력을 정기적으로 수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경력개발 측면에서 보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직업이 아닌 직장을 선택하게 만든다.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문성을 키우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동하도록 꿈을 키우기 보다는, 서열화된 직장을 보고 취업을 하게끔 만든다. 자신의 적성이나 장기적인 개인의 비전 달성 여부를 취업의 우선 조건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회사에 입사해서도 본인이 원하는 부서로 배치 받지 못하면서 부적응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인사팀에서 신입사원들의 채용이나 교육을 담당하다 보면 신입사원들이 배치받기를 원하는 부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무 중심으로 채용을 한 것이 아니기에, 대다수는 조직 내에서 힘이 있고 승진이 잘되는 부서에 배치받기를 희망한다. 문제는 조직 내에서도 인력의 미스매치 현상이 일어나서 원한다고 모두가 가고 싶은 부서에 배치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많은 신입사원은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업무가 그래도 할 만하다고 느끼면 조직에 적응하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1년 이내에 퇴사하는 신입사원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자연스럽게 조직원이 되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개인이 원하는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받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조직은 앞서 말한 조직 내 인력 미스매치 현상 때문에 모든 구성원의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줄 수 없다. 조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가로서 성장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가 되면서 많은 경력개발 학자들이 앞으로는 80세까지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에서 정한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하더라도 20년 이상 더 일을 해야 한다. 퇴직 후 얻게 되는 직업들이 직장생활을 통해 쌓은 전문성과 연계되면 좋겠지만, 체계적인 경력을 개발하고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는 힘들 것이다. 동네 치킨집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없어지는 현상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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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능력중심사회로 전환하는 기점에 서있다. 능력중심사회가 되려면 우리의 의식구조가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후 직업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직장으로 찾아 갈 수 있도록 의식 전환을 도와줘야 한다. 일과 관련해 쌓은 경험이 곧 경력이 된다. 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찾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경력을 고려해서 직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전문가를 점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도입하여 많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경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채용 단계에서 채용 직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능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획적인 유관업무 배치를 통해 경험을 계속 쌓게 하면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게 될 때 학력이 아닌 개인의 비전과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