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관·사장님 앞에서 비정규직 아픔을 말하라구요?

[기자수첩]장관·사장님 앞에서 비정규직 아픔을 말하라구요?

이동우 기자
2015.09.04 03:25

"밖에서 들리는 소리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심하다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대우의 차이가 없어 실감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시 용산구 한진중공업 본사를 찾아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 근로자가 말했다. 시종일관 긴장된 표정과 경직된 자세를 유지하던 이 근로자는 장관이 비정규직 근로자로서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 짤막하게 답했다. 장관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간담회는 한 시간 반 동안 줄곧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600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현실은 불과 3평 남짓한 간담회장에서는 다른 나라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쪼개기 계약이 난무하고, 인격적 차별이 수시로 이뤄지는 현실에 대한 쓴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근로자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며 파견 업종을 확대해 달라는, 일반적인 노동계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담회 현장에는 해당 업체 대표이사, 전무를 비롯해 파견업체 대표이사 등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 대표들이 동석했다. 그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당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줄 테니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의견 개진이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마치 사자 우리에 토끼를 풀어두고 자유롭게 뛰어놀라고 말하는 꼴이다.

이 장관은 최근 현장의 목소리를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일선 현장의 근로자들은 노동개혁을 원하는데 중앙에서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한목소리로 '10%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줄곧 이런 방식으로 현장 의견을 들어온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날 간담회는 결국 정부의 정책 설명회로 변했다. 노동개혁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비정규직 '2+2 기한연장' 등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정책을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아픔과 어려움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던 장관은 이날 가장 많은 말을 한 사람이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