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7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15세 소년 문송면의 죽음.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온도계공장에 취직했다가 두 달 만에 수은에 중독된 소년은 사지가 마비되고 뼛속까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 세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이에,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가 일한 공장바닥엔 항상 수은이 흥건했고 노동자들이 철벅철벅 그 수은을 밟아가며 일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2015년 10월, N전구 광주공장에서 설비를 철거하는 작업에 투입된 용역업체 노동자 6명이 집단으로 수은에 중독되었다. 이들 역시 철거할 대상이 수은을 취급하던 설비라는 것을 전혀 몰랐고 N전구나 용역업체 누구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설비철거를 위해 산소절단기로 파이프를 자르면 은색 액체덩어리가 줄줄 쏟아졌고 주먹만 한 액체덩어리가 바닥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수은인지도 모르고 바닥에 누워 또 기어다니며 일했다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사고는 산업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재해가 아니다. 사실상 살인미수와 같다. 지난 7월 청주에서 발생한 지게차 사망 사고도 회사가 산재사고를 은폐하려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마저 돌려보내는 바람에 살아있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실상 살인이었는데 그런 행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우리 정부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도해온 ‘미나마타협약’(국제수은협약)에 서명했고 내년쯤 그 협약이 발효된다지만 광주에서의 수은중독 사고는 그런 협약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 4월16일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정부가 재발방지 대책으로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기구개편을 단행했지만 그 이후에도 인명경시 풍조에 터 잡은 크고 작은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세월호 사고 후 1년이 지난 올해 4월, 모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85.8%)이 ‘세월호와 같은 대형사고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것은 바로 기구개편이나 협약체결과 같은 형식적 변화가 해결책이 아님을 이미 다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고나 임금체불 그리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노동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손과 발이 떨어져나가고 나머지 생을 고통 속에 보내야 하며, 심지어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산업재해보다 중한 노동문제는 없다. 그렇기에 1988년 15세 소년 문송면의 죽음은 직업병과 산업재해 추방운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수은중독 사건이 다시 발생했음에도 세상은 쉬쉬하며 너무도 조용하다. 시간은 흘렀으되 ‘사람존중’의 철학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에 따른 체념과 허탈함의 표현인 듯하다.
노동개혁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 ‘사람존중’의 철학을 되새겨야 한다. 치명적인 수은이 흥건히 배어있는 공장바닥에 노동자들이 나뒹굴도록 방치하고 돈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풍토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떠한 개혁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2015년 GDP 기준 세계 11위라지만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비록 노·사·정 합의문에서는 문구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수은중독 사건으로 되돌아본 산업안전과 보건 문제가 우리에게 ‘사람존중’의 교훈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