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마음은 콩밭에, 일은 누가 하나

[기자수첩]마음은 콩밭에, 일은 누가 하나

세종=유영호 기자
2015.11.16 03:38

"일하라고 윽박지른들 장관이나 우리나 일이 손에 잡히겠나."

지난 12일 청와대가 "당분간 개각은 없다"고 못 박은 직후 한 중앙부처의 고위공무원이 기자를 만나 털어놓은 말이다. 현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이 일찌감치 제기됐던 이 부처는 사실상 수개월째 업무공백 상태다.

장관 교체가 예상되는 다른 부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장관 입장에서는 물러나기로 한 상황에서 업무에 의욕을 갖기 어렵다. 소속 공무원은 일손을 놓고 후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둘 다 하루가 1년 같을 것이다.

수년째 중앙부처를 취재하면서 지켜본 온 입장에서 공무원을 탓하기만은 어렵다.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도 먹고 사는 '밥그릇'과 직결된 인사 문제 앞에서는 쪼그러들 수밖에 없다. 이상과 현실을 놓고 왜 현실을 택하냐고 비판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공직사회에는 '인사가 만사'다.

더욱이 청와대는 개각론을 일축하는 과정에서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바꿔말하면 '조만간' 개각을 단행하겠다는 신호를 공직사회에 준 셈이다. 실제 총선 입후보 일정 등을 고려하면 다음 달 초에는 개각이 불가피하다. 이 상황에서 개각 문제는 공직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다.

'지금은 시급한 민생관련 법안과 노동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는데 내각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는 청와대의 개각 연기 배경은 충분히 공감한다. 개각시 인사청문회 등 정치일정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에게 민생에 집중하라고 주문하는 건 무리한 일이다. 이들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무리한 주문은 피로감만 더 할 뿐이다. 국정에 집중하려고 했다면 차라리 조기 개각을 단행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

경제에서 가장 나쁜 건 불확실성이다. 이번 개각 연기도 그렇다. 불확실성만 가득 키워서 모두가 혼란스럽다. 개각을 미루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내각을 신속하게 교체해서 혼란을 걷어내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더 낫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4대 개혁도 마무리하고 내년 총선도 잡고 싶은 정부, 여당의 절박함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쳐다봐야(戴盆望天)' 결국 물 쏟을 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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