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집 주변 슈퍼나 하나로마트만 찾다 오랜만에 대형마트를 찾아 보곤 뒤늦게 놀랐다. 광장시장 빈대떡부터 시작해 콧대 높은 유명맛집의 간판메뉴가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간편가정식으로 버젓이 나와 있었던 것. 유통의 힘은 수십 년 맛집의 옹고집 사장님도 돌아앉게 만든다.
수년간 주요 대형마트들이 PB 마케팅 전쟁을 펼친 결과 소비자는 단지 값싼 간편가정식이 아니라 유명하고 맛 좋은데다 가격까지 착한 양질의 간편가정식을 즐기게 됐다. 물론 대형마트 PB의 저가공세에 대형 제조사들은 한숨을 쉰다.
확실한 브랜드 우위를 점하지 못한 기업들은 낮은 마진을 감수하고 대형마트 PB 생산 대열에 합류한다. 어차피 자체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키우거나 가격을 확 낮출 수 없다면 마진이 작더라도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게 낫다. 시장원칙이다.
대형마트의 유통파워를 기반으로 한 PB 제품의 선전. 전통 내수산업으로 꼽히는 식품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IT 디바이스의 꽃으로 불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머지않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전망이다. 이동통신사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제품이 다양화되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선보인 ‘루나(Luna)’의 인기에 힘입어 두번째 자체 기획폰인 ‘쏠(Sol)’을 내놨다. 각각 달과 태양을 자체 브랜드 이미지로 구축하겠단 계획이다. 출시 4개월 만에 15만대 넘게 팔린 루나에 이어 쏠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특히 SK텔레콤은 전작 루나와 달리 쏠을 100% 자체 기획을 거쳐 출시했다. 제작은 중국 TCL 알카텔에 맡겼다. 낮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부품 소싱 능력을 갖췄고 디자인, 완성도 면에서 유럽 감성을 갖춰 제작을 맡기기에 적합했단 후문이다.
삼성, LG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로서는 제품이나 프로젝트별로 구미에 맞게 제조사를 선별해 생산을 맡기는 이런 흐름이 반가울 리 없다. 이동통신사의 입김이 그만큼 커지고 이대로라면 안방 시장에서 ‘메이드인차이나’의 점유율이 늘고, 국산 메이커의 마진하락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예전과 달리 소비자들이 ‘브랜드’ 보다는 ‘가성비(가격대비성능)’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국내 제조사들의 또다른 위기다. LG유플러스가 단독 출시한 ‘화웨이 Y6’는 출시 한달 만에 2만대나 팔렸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제조사들의 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후 보루였던 안방 시장마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성비’로 중국 제조사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자가 애플이 아니라 화웨이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프리미엄폰 시장에서의 리더십 확보와 중저가폰 대응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국내 제조사들의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