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흔의 '스타트업 페이스메이킹']<1>창업가의 세 가지 유형

한 평론가의 강연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과거에는 왕이나 사제 등 정치가가 미래를 제시했기 때문에 상공인들은 법관이 해석한 협소한 체계에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변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6'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갔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다. 지금은 창업가와 혁신가들이 미래를 제시하는 시대다. 그들이 상상하고 만들어낸 제품과 서비스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며, 그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이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는 조율을 맡은 지원자다.
이제 창업가와 혁신가가 다수 출현하지 못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임진왜란 직전 '십만양병설' 만큼 절박한 사안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대다수가 '사농공상' 식의 옛날 체계를 버리지 못했다면 갈 길은 아주 멀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업가는 어디에서 올까. 첫 번째 유형은 타고난 창업가다. 20대 초반에 바로 창업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다. 당사자들은 치열한 과정을 거치지만 외부의 시각으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다. 우리 사회의 보배 같은 존재들이다. 다만 이들의 출현을 예측할 순 없다. 창업가 스스로도 미리 알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도 이들을 겨냥한 지원책을 미리 계획할 수 없다.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두 번째 유형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등 안정적인 조직에서 일하다가 나온 창업가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들이다. 일하는 요령을 알고 전문지식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런 창업가들은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없는 첫 번째 유형의 창업가와는 또 다른 종류의 고생이다. 바로 '경험 있음'에서 오는 고생이다. 사실 창업가와 혁신가의 DNA와 전문가와 실무자의 DNA는 다르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안정적인 조직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물론 두 번째 유형의 창업가가 첫 번째 유형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당사자는 아주 괴로운 인고의 시기를 겪기 마련이다.
세 번째 유형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나온 창업가다. 조직이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경영진을 가까이서 보고, 부족한 자원에서 어떻게 선택과 집중해야 하는지, 조직이 성장통을 겪어가는 과정도 생생히 목격한다. 스타트업에서는 창업 DNA의 복제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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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유형의 창업가에게 주목해 보자. 평생 고용의 시대엔 "우리아이를 어떻게 중소기업에 보내냐", "내가 어떻게 중소기업에 가냐"고 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필자가 10년 동안 벤처 투자를 해 보니, 성공 사례가 가장 많이 나온 유형은 세 번째 창업가였다.
두 번째 유형은 계속 생겨난다. 쏟아져 나온다. 그들이 갑자기 첫 번째 유형이 될까. 세 번째 유형을 거치길 권한다. 꼭 창업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전문가와 실무자로서 제 2의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는 기회도 많다. 그런 뒷받침이 있어야 세 번째 유형의 창업가들이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다.
물론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고 고생만 하거나, 창업가를 사칭한 사장에게 착취만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서 엔젤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의 역할이 또 하나의 순기능을 갖는다. 평판 있는 초기 조력자와 투자자가 가려서 선택한 스타트업은 최소한 '이상한' 스타트업은 아니다. 그런 조직에서 설령 회사가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성실실패'의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대기업 취업률을 스타트업 창업률로 바꾸기 위해 단기적으로 너무 무리해선 안 된다. 스타트업 중에 대박이 얼마나 나는지에만 너무 지나치게 매몰돼서도 안 된다.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 봐라'는 식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스타트업은 현재의 경제성장동력이자 창업가와 혁신가의 DNA를 묵묵히 복제해내고 있는 미래의 화수분이다. 이 정신이 널리 인식돼 문화가 돼야 한다. 성과와 지표는 일시적이지만, 문화는 사회적 자산으로 오랫동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