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에서조차 학생들의 실명이 성적순으로 게시된다. 심지어 최저성적을 두 번 이상 받은 학생의 이름 옆에는 ‘강제 퇴원자’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그 옆에는 ‘수능까지 달리든가 중도에 포기하든가 네가 알아서 하렴’이라는 조롱의 문구도 함께한다. 그러나 대학에 합격한 학생의 이름은 대문짝만하게 현수막에 내걸리고 잘 했다며 ‘탈북학생’이란 칭호까지 받는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읽은 이 기사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순간 떠올린 어린 학생의 모습이 경쟁에서 밀려난 저성과자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일반적으로 저성과자란 조직에서 성과가 낮고 잠재력도 낮은 인력을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저성과자는 어느 조직에서든 존재하기 마련이고 상대평가는 반드시 저성과자를 만들어낸다. 가령 여러 기업에서 가장 능력 있고 똑똑한 사원들을 선발하여 모아놓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저성과자는 또 분류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성과자는 색출해 퇴출시킬 대상이어야 하는가.
저성과자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저성과자 ‘선정’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그들에 대한 ‘관리’ 문제다. 저성과자 선정의 문제는 곧바로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으로 연결된다. 저성과자로 선정된 자가 그 결과를 수용할지는 그 객관성과 공정성에 좌우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얼마 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9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의 56.3%가 자신의 업무성과에 대한 회사의 평가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답했고 7.9%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매일노동뉴스 3월22일). 이는 저성과자 문제가 ‘선정’ 단계부터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관리’의 문제는 어떠한가. 저성과자 관리의 한 축은 ‘역량개발’이고 다른 축은 ‘퇴출’이다. 역량이 모자라니 개발해야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더 이상 개발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퇴출의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저성과자 관리를 역량개발이 아닌 퇴출에 우선순위를 둔 기업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4호는 ‘근로계약’을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동시에 근로계약을 하는 것처럼 묘사한 법적 개념이지 실상 근로계약은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상품화한 노동력을 구매함으로써 성사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매한 노동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1차 책임은 바로 기업에 있으며, 그 책임에는 업무수행을 위한 역량개발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저성과자가 애초부터 능력이 없었거나 부적합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그것은 채용을 잘못한 것이고 역량과 직무의 불일치, 조직 부적응 등으로 저성과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인력운용을 잘못한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책임은 회피한 채 저성과자라 하여 곧바로 퇴출로 몰고 가는 것은 어쩌면 기업 스스로 경영의 저성과자임을 공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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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경영은 쉽게 저성과자를 양산하고 그들을 퇴출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저성과자로 선정되어 퇴출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남은 사람들의 로열티(loyalty)를 떨어뜨린다. “경영을 잘 하려면 돈도 알아야 하지만 사람을 알았어야 했다”는 모 대기업 사장의 담화문이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