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히 결혼을 앞둔 10년 전 일이다. 친하게 지내던 한 금융권 취재원이 이런 말을 했다. "신혼집은 아파트보다 빌라나 다가구, 아니면 반지하 주택이라도 알아보세요." 새로운 인생의 화려한 출발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던 나는 그의 말을 그냥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볍게 넘겼다. 얼마 전 그를 만나 10년 전 말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는 "부자가 되려면 일찌감치 씀씀이를 줄여 주식 등 돈 되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장기투자 전도사로 불리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교통비는 물론 그 흔한 커피까지 줄여 주식에 장기투자를 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업계 최고 수준이던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 운용수익률이 올 1분기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단기수익은 의미가 없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 쌈짓돈을 5년, 10년 이상 주식에 장기투자하면 부침은 있지만 예금이나 적금보다 휠씬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존 리 대표는 1990년대 미국에서 생활할 때 2만달러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 그때부터 20여년간 매달 월급의 10% 정도를 펀드 등 주식에 투자해 100만달러까지 불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기간 동안 길게는 1990년대말 아시아 금융위기, 짧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초대형 악재라는 사이클도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주식 등 자산 가치가 떨어진 뒤 다시 올랐고 그의 투자수익도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존 리 대표는 "주식은 어쩌면 사라질 질 수도 있는 쌈짓돈을 종잣돈으로 만들 수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적은 돈이라도 가치주를 선택해 장기간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덧 존 리 대표는 금융권에서 서로 모시고 싶어하는 강사가 됐다. 억대 연봉을 받는 CEO(최고경영자)에 투자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지금도 여느 CEO처럼 기사가 딸린 자가용이 아닌 주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역설적으로 존 리 대표가 유명한 투자전문가가 된 건 그의 투자 철학이 말처럼 쉽지 만은 않아서다. 여전히 투자자들은 금융시장 악재에 일희일비하며 주식보다 예금 등 안전자산을 선호하고 시중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자금이 넘쳐난다. 이미 현금과 1년 미만 예금 등 단기 부동자금은 지난해부터 급증해 지난 4월 말 기준 945조원에 달한다. 1000조원가량을 단기간에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곳에 묻어둔 것이다.
지난 24일 유럽 역사상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가장 큰 사건이라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확정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다시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주식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금이나 달러, 엔, 예금 등 안전자산 선호를 부추길 것이라는 평가다. 한편에선 그래도 쌈짓돈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주식 등 위험자산에 오랫동안 투자하는 게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그만큼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