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월 25%' 고수익의 덫

[우리가보는세상]'월 25%' 고수익의 덫

송선옥 기자
2016.08.04 03:29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아침 출근길이지만 찜통이 생각나는 더위가 한창이다. 이런 날씨에도 서울 여의도 H증권 앞에는 10여명이 수주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이 회사 영업점 직원 A차장의 사기로 날리게 된 50억원을 회사가 책임져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회사의 A차장은 2014년부터 대학교수와 대기업 임원, 지인들로부터 50억원을 받아 돌려주지 않고 잠적했다가 최근 구속됐다. 이 투자자들은 월 또는 분기에 25%의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의심 없이 A차장의 개인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그러자 A차장은 정치인 등 VIP들이 함께 투자하기 때문에 비밀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투자자들을 꼬드겼다. 하지만 몇 차례 돈을 더 투자해야 한다는 말에 의심이 든 한 투자자가 민원을 내면서 이 사건은 알려지게 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A차장은 2008년에도 고객 돈 수십억원을 활용해 임의로 매매를 했다가 20억원의 손실을 보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 또 옵션 투자를 해주겠다며 고객 5명의 돈 4억여원을 다른 증권사 계좌로 받아 운용하다 들통이 나 회사로부터 급여통장을 가압류당하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감봉 6개월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회사 내 '관심사원'이었던 것이다.

시위에 나선 한 투자자는 왜 사고를 친 직원이 고액을 직접 관리하는 영업점에 배치됐는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회사측은 A차장이 사규에 따라 실형을 선고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임의로 해임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영업직 외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을 낼 경우 노동부에 임의인사로 신고할 가능성이 있어 제재가 끝난 뒤 다시 영업점으로 복귀시켰다고도 했다.

아울러 다른 회사의 개인 계좌를 통해 사기를 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미리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쯤되면 수십억원의 손실에도 실형을 받지 않았다는 법 구조가 이상하게 여겨진다. 여기에 A차장이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 법적으로는 H증권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감시 한계 등을 이야기하는 H증권의 해명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는 직원을 영업 일선에 세우고도 제대로 관리 감독을 못했다는 도의적인 부분에선 책임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사고는 사후 처리가 아니라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회사에서 자산관리 1위 직원으로 표창까지 받았던 직원이기 때문에 그가 가져다주는 수수료에 회사가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물론 '월 25%'라는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기대하고 비상식적으로 거금을 맡긴 투자자들의 책임도 크다.

어쩌면 증권업계 불황의 축소판이 아닐까. 업황 위축으로 유능한 인재를 떠나보내고 성과보수를 줄이는 대신 수수료 수익에 목 빼는 증권사와 활황기에 헤퍼진 씀씀이를 줄일 수 없어 탐욕을 부린 증권맨, 박스권 장세에 질려 믿을 수 없는 고수익에 기댄 투자자들의 모습 말이다.

출근길 시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뜩이나 더위 때문에 잃은 입맛이 더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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