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순데렐라의 벗겨진 구두 한 짝

[우리가 보는 세상]순데렐라의 벗겨진 구두 한 짝

송지유 기자
2016.11.02 16:06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남자 잘 만나 단번에 인생 역전한 여자의 대명사 '신데렐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 신데렐라는 파티장에 유리구두 한 짝을 남긴 채 사라졌다. 호박마차에 황급히 몸을 싣느라 벗겨진 신발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이 구두 한짝은 왕자의 손에 들어가 달콤한 로맨스의 연결 고리가 됐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도 벗겨진 구두 한 짝이 화제다. 절친한 대통령 언니의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 곳곳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의 '프라다' 구두다.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한 최씨가 수백 명의 취재진과 시민들을 뚫고 청사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사진 기자들이 최씨가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신발 한 짝에 달려들어 플래시 세례를 퍼부으면서 브랜드가 노출됐다. 72만원짜리 '프라다 블랙레더 슬립온 스니커즈'라는 사실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과 인터넷 포털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네티즌들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패러디해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며 최씨를 공격했다. "검찰에 출석하면서 명품으로 치장해야 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최씨를 동화 주인공 신데렐라에 빗대 '명품밖에 없는 '순데렐라'의 가장 소박한 옷차림', '대통령에겐 싸구려 입히고, 순데렐라는 명품만 입었다'는 비아냥도 쏟아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패션과 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블레임 룩(Blame Look)' 현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김이 검찰에 소환될 때 착용했던 '에스까다' 선글라스는 큰 화제가 됐다. 테에 큐빅이 박힌 커다란 검은 렌즈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였다.

2007년 불륜 스캔들과 학력위조 사건의 주인공 신정아씨가 입은 귀국패션도 이슈였다. 그녀가 착용한 '돌체&가바나' 재킷과 '버버리' 청바지,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불티나게 팔렸다. 2011년 해외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가수 신정환이 인천공항에 입국할 때 입은 '몽클레르' 패딩과 '디스퀘어드' 청바지,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고(故)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입었던 '로로피아나' 재킷도 대표적인 블레임 룩으로 꼽힌다.

최근 최씨의 입국·검찰출두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명품 업계는 표정관리에 나섰다. 인터넷에서 최씨가 착용했던 패딩(몽클레르)과 모자(헬렌 카민스키), 가방(토즈), 신발(프라다·알렉산더 맥퀸) 등으로 추정되는 브랜드 리스트가 돌자 "우리 제품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업체도 나왔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블레임 룩의 경우 단기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브랜드 입장에선 단기 매출보다 '최순실 브랜드'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심지어 최씨가 검찰 조사를 받으며 시켜 먹었다는 서초동 곰탕집에 손님이 몰려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최씨가 입었다는 패션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는 곰탕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이 무뎌지고,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까봐 걱정이다. 다행히(?) 최씨의 구두 한 짝은 왕자가 아닌 검찰청사 경비원이 주워 돌려줬다고 한다. 그녀를 구원해 줄 왕자는 없다. 달콤한 해피엔딩 역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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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국내외 벤처투자 업계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간, 한 뼘 더 깊은 소식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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