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세상읽기]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선임한 뒤 박 대통령은 의전대통령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을 한마디로 하면 마주보며 달려 충돌하기 직전의 기관차와 같다.’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의 유신시대와 전두환 대통령의 철권통치 시절, 외신에서는 곧잘 이런 표현이 오르내렸다. 무력으로 국민을 위협하며 독재정치를 유지해 나가려는 집권세력과 이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야당과 학생 및 노동자들 사이의 타협 없는 충돌을 빗댄 것이다.
두 개의 기관차는 충돌직전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돌발변수로 급격한 反轉(반전)을 맞이했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심복이던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박 대통령 저격으로, 전두환 철권통치는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에 따른 대규모 국민항쟁(1987년 6.10항쟁)으로 각각 막을 내렸다.
2016년 11월의 한국 政局(정국)도 충돌하기 직전의 기관차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정당성’이 흔들리면서 100만 명이 시위에 나서는 등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세 불리를 느낀 박 대통령은 두 번에 걸쳐 내키지 않는 대국민 사과를 억지로 했고,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책임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은 일언지하에 박 대통령의 ‘굴욕적 요청’을 거절했다. 한발 나아가 대통령의 자발적 퇴진(하야)을 요구하며, (하야하지 않을 경우)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추미애 더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의했고,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자 의원총회에서 거부해 백지화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이러자 박 대통령은 차관 인사를 단행하는 등 한동안 ‘손 놓고 있던 국정’을 다시 챙기고 나섰다. 은인자중하던 보수세력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야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당황한’ 야당은 여전히 하야를 주장하면서도 서둘러 ‘책임총리’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국민의 3.5%인 180만명을 넘으면 대통령이 하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시위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급기야 추미애 대표는 “박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는 말까지 내놓았다.
박 대통령(및 친박 새누리당 의원들)과 야당들의 힘겨루기가 거세지면서 국민들도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100만명이 박대통령 퇴진 시위를 벌인 데 이어 19일에는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한 시위가 예정돼 있고, 박 대통령 퇴진을 반대하는 진영도 맞불 시위를 한다는 계획이다. 자칫 잘못하면 시위대끼리 충돌함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순실 국정논단’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통치정당성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동국대학교 황태연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 권한대행형 총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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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는 “헌법에 대통령 유고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며 “‘최순실 국정농단’을 ‘정치적 유고’로 보고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 ‘대통령 권한대행형 총리’를 임명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한대행형 총리가 국정을 총괄해 개헌을 마무리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되 박근혜 대통령은 ‘의전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결재해야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며 “박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거나 탄핵절차에 들어갈 경우 뜻하지 않는 혼란과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며 “한시적으로 영국의 여왕처럼 ‘군림을 하되 통치하지 않는 대통령’의 존재를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 과도정부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대안은 ‘5년 단임제’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사회전반적 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개헌하지 않은 채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경우 후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보장받기 어려운 개헌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개헌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지금은 국민들이 원하는 개헌도 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도 뽑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꿈꾸는 개인과 정당의 이해관계 때문에 좋은 기회를 흘려버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커다란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라 통치정당성을 잃은 박 대통령에게 힘을 돌려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시민들의 시위에,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기보다, 박 대통령 및 여당과 협상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형 총리’ 선임과 개헌 및 대통령 선거를 위한 협의와 타협을 이뤄내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시위는 시민에게 맡기고,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서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살리는 길이다. 시민의식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는데, 정치권의 리더십은 과거보다 뒤쳐져 있으면, 결과는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