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대한민국의 또 한번 겨울나기

[MT 시평]대한민국의 또 한번 겨울나기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6.12.07 04:40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살아있는 모든 만물은 겨울채비를 서두른다. 음식이 부족한 시기를 견디기 위해 어떤 동물은 미리 많은 양의 먹이를 섭취한 다음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인간 역시 음식이 부족한 때를 대비해서 겨울이 다가오면 지방을 비축하는 그래서 살이 찌는 경향을 보인다. 어찌 동물만 그러한가? 식물들도 서리가 내리고 온도가 떨어지는 등 겨울이 다가오면 성장을 멈추고 열매를 맺고자 서두른다. 병이 든 과일나무에 달린 열매가 더 빨리 익는 것을 보면 금방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모두 진화의 산물이다. 오랜 세월 유기체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살면서 몸소 배운 학습의 덕택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사회에도 적용된다. 주어진 사회적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특성들이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수됨으로써 소위 문화적 유전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도 다루기 어렵고 힘든 겨울을 만나면 그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을 학습해왔다. 물론 그 구체적인 대안은 사회마다 서로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면 학습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경험을 통해 동일한 상황에서 이전과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과 관련해서 무엇을 배우는가? 그것은 주어진 상황의 특성과 그때 작동하는 사람의 마음간 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승객들로 빽빽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분노를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심리를 배우고 그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사회도 배우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속도는 느린 편이다. 보통 개인에 비해 사회를 둘러싼 상황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 인간은 80년 남짓한 기간에 인생의 다양한 계절을 경험하지만 사회가 마주하는 상황은 몇 세대를 거쳐 똑같이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사회가 무엇을 배워 이전과 달라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구성원에게 그와 같은 학습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사회의 학습은 배움의 속도가 가장 느린 구성원에게 달려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는 것이 더딘 몇몇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근현대사에서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서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짧지 않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국권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무고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을 치르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배웠으며, 폐허와 가난의 시절을 거치면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알았고,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민주와 자유의 소중함을 몸소 학습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에 대하여,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학습해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겨울창문에 성에가 가득 끼어 밖이 뿌옇게 보이는 것처럼 요즘 우리 사회의 시계는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지난 여러 겨울을 잘 났듯이 이번 겨울도 잘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분명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 삶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이 초유의 역사적 경험은 이전의 경험이 주지 못한 새로운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다. 그것을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오늘 아침도 뿌연 안개와 미세먼지로 창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 속에서도 학교에 걸린 깃발이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도 밖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보인다. 꿋꿋이 그 길을 가는 많은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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