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2017년, 견고한 세상을 건드리는 것

[광화문] 2017년, 견고한 세상을 건드리는 것

이승형 부장
2017.01.03 04:03

‘밴드의 시대’가 저문 건 꽤 오래 전이지만 1980년대 '킬링조크'(Killing Joke)란 범상치 않은 이름의 4인조 영국밴드가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펑크록'(Punk Rock) 계열의 밴드인데 난 지금도 이들의 음악이 그 바닥에서는 최고였다고 믿고 있다. 동시대 밴드였던 '섹스피스톨스'(Sex Pistols)나 '더 클래시'(the Clash)도 이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노래, 연주, 무대매너 등 밴드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에서 여타 유사한 밴드들을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킬링조크는 리더 재즈 콜먼(Jaz Coleman)의 영향으로 알레이스터 크롤리(Alister Crowley)류의 악마주의적, 신비주의적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그 안에는 현실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당시엔 히피의 또다른 계통을 좇는 이런 숭배성 문화가 음악계의 흔한 비주류였다. 일례로 ‘오지 오즈본'(Ozzy Osbourne)이 부르고 ‘랜디 로즈'(Randy Rose)가 연주한 그 유명한 '미스터 크롤리'(Mr. Crowley)는 알레이스터를 기리는 노래다.) 킬링조크는 에너지 포인트, 격자무늬의 벡터점, UFO와 같은 독립적 매개체 등 오컬트적인 사상의 영향을 한때 음악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비주의와 더불어 이들 음악의 또다른 한 축은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들은 거침이 없고 타협이 없었다. 늘 기성사회와 싸웠고 욕을 했고 약을 했고 똥을 싸댔다. 영국의 주류언론들은 이들을 가리켜 "영혼을 좀먹는 음악을 한다"고 했다. 이들은 대처가 지배하던 영국에서 인종차별과 민영화를 반대하고 독재를 조롱했다. 실제 이들의 노래 몇 곡은 금지곡이 됐다.

이들은 숱한 히트곡과 공연에도 늘 무일푼이었다. 돈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치열하게 '자기만의 것(originality)'을 추구하고 창조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런던 클럽에서 공연한다.

최근 두 달여 우리 사회는 예상치 못한 큰 변혁을 겪고 있다. 대통령은 탄핵되고, 세월호 참사는 재조명되고 있으며, 1000만명의 국민이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 와중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사건도 불거졌다. 수천 명에 이른다는데 어떤 연유에서 그 리스트에 올랐는지 본인도 모를 인사가 태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0월 이전에 우리 예술문화계, 언론계에서 ‘저항’ 혹은 ‘비판’이란 태그를 달 만큼의 실제적 행위를 한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돌이 대부분인 대중음악계만 놓고 보면 더 그렇다. 죄다 비슷한 노랫말과 춤, 얼굴들이다. 이들은 또한 착하다.(착한 척을 한다) 누군가 상처받지 않을 말만 골라서 한다. 대중 혹은 권력으로부터의 비난을 두려워한다. 사회비판적, 정치적 메타포를 담은 음악은 꿈도 꾸지 못한다. 모두가 사회참여적 음악을 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애정 타령만 한다면 예술의 확장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최근에는 시류가 바뀌면서 음악계에서도 서서히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일례로 가수 치타와 정성환이 부른 세월호 추모 노래가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에 ‘다시, 봄 프로젝트’라는 그룹이 ‘다시, 봄’이란 앨범을 2장이나 내면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했지만 안타깝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이들은 그 엄혹한 시간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냈다. 진짜 예술가는 김경주 시인의 말을 빌려 보자면 이렇게 ‘견고한 세상을 건드리는 자들’이다.

2017년 봄에는 조기 대선을 치른다. 대선 후보군이 이미 출발선에서 대기 중이다.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2016년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세심하고, 평등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언론인과 문화예술인이 해야 할 시대적 책무이자 사명이다. 이제는 권력이 뽑은 ‘블랙리스트’가 아닌 국민들이 뽑은 ‘화이트리스트’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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