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새해에 꿈꾸는 큰 사랑

[MT 시평]새해에 꿈꾸는 큰 사랑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7.01.04 04:12

우리말 ‘사랑’은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뜻하는 말이다. 한 연구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랑은 ‘사르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이 말은 ‘불사르다’처럼 어떤 것을 불에 태우거나 녹여서 하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연히 하나를 이루려는 그 강한 열망으로 속과 애를 태우게 된다. 본래 우리 인간은 둘로 남기보다는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 훨씬 더 강한 존재이다.

사랑이라는 이 말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각자가 가지는 본래 속성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서로를 살라 질적으로 다른 하나로 거듭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서로 다른 둘이 어떤 변화도 없이 그냥 한데 묶여 있거나 병행하는 것은 사랑의 본뜻과 거리가 멀다. 이런 면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둘로 어우러진 더 큰 하나를 위해 각자의 작은 하나를 기꺼이 버리는 과정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속에서 그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선민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처와 배신의 위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위험과 모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한 유형이 남녀의 낭만적 사랑처럼 두 사람 간의 관계적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은 거의 모든 사람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두 사람에게 국한한다는 점에서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관계적 사랑보다 좀 더 큰 사랑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다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한정적이고 배타적이다. 왜냐하면 보통 이러한 사랑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사랑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고, 집단이 나를 아끼고 배려할 때 나도 그 집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따라서 한 쪽만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랑은 오래갈 수도 없다. 상대방을 우선적으로 위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없앨 수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하고 사랑할 때 아랫사람도 그 윗사람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애쓸 때 그들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자 한다.

 

또한 이런 사랑은 때로 갈등과 다툼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악용하거나 착취할 수 있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거나 차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은 사랑과 미움을 모두 내포하기 쉽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하여 가지는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나머지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는 무시나 분노와 같은 미움의 마음이 공존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가지는 가장 큰 역설이다.

이것보다 좀 더 큰 사랑은 자신의 관계나 집단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이다. 어렵지만 이러한 사랑을 꿈꾸고 추구할 때 지금은 피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도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로 어울려 살겠다는 좀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이야말로 우리말 사랑이 뜻하는 그 궁극적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사르고 녹여서 큰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사랑과 가장 큰 우리로 나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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