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5월이면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이란 이름을 단 공중 보행교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역 고가의 재탄생은 한국의 도시개발사에 한 획을 긋는 의미를 지닌다. 1969년 3월19일 착공돼 1970년 8월15일 완공된 서울역 고가는 서울역 앞 교통혼잡 해소와 함께 도심부(퇴계로)와 서남부(제2한강교(양화대교) 및 서울대교(마포대교)) 간 원활한 교통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자동차 시대의 도시구조를 짜는 한 방편으로 설치된 만큼 서울역 고가는 당시 한국의 근대화를 표상하는 상징물로 간주됐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엔 총 101개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가도로들은 당초 의도와 달리 미래지향적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할 고가도로가 과도한 차량의 유입으로 오히려 심각한 체증을 유발하고 거대 구조물로 인해 지역이 단절되고 흐름이 왜곡되는 현상이 속출했다. 서울역 고가도로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는 차량은 하루 4만6000대에 달했지만 60% 정도는 단순통과가 목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서울역 일대는 늘 그냥 스쳐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채 공중에서 자동차로 획 지나가다 보니 그곳에 눈길을 주고 머물며 또한 그로 인해 사람과 활동이 모이고 발전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될 가능성은 억제되었다. 서울역은 근대 서울의 출발점이고 하루 39만명의 사람이 오가는 교통요충지며 지근거리에 남대문시장, 명동, 남산, 시청 등 중심부 시설공간을 뒀다. 하지만 서울역(일대)은 이들과 연계된 도심부의 거점 역할을 제대로 못 해왔다. 서울역 일대의 낙후는 이렇듯 서울역 고가와 무관치 않았다.
2002년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떡전고가 철거를 시작으로 하여 서울 전역에서 고가도로의 철거가 본격화했다. 2006년 감사원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 안전성평가에서 D등급 판정이 나오면서 서울역 고가 철거도 불가피해졌다. 철거는 오세훈 시장 재임 때인 2008년 시정방침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2014년 5월 박원순 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로와 공원으로 활용하는 입장을 전격 발표했다. 2015년 1월29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 친화적인 고가공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1970년에 만든 차량길을 2017년 사람길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2015년 5월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의 국제현상설계 공모에서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마스의 ‘서울수목원’을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했다.
당선작 ‘서울수목원’은 서울역 고가를 하나의 큰 나무로 설정하고 퇴계로에서 중림동까지 국내 수목을 심고 램프는 나뭇가지로 비유하여 17개 보행길과 연계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공원화 사업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로 명명됐지만 공식적으론 ‘서울역 역세권 종합재생(안)’이란 ‘도시재생특별법’상 법정 재생(활성화) 계획으로 수립됐다.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를 폐지하는 대신 사람들이 걷고 휴식을 취하는 공중고가공원으로 재생하고 이를 계기로 낙후된 서울역 일대 개별 권역(서계동, 중림동, 회현동, 남대문, 만리동, 서울역, 서울역과 서울역 북측 등)의 통합 재생을 도모하는 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와 연동되고 또한 포함된 ‘서울역세권 종합재생’의 내용이다.
찻길을 사람길로 재생한다는 것은 ‘선(線)의 재생’을 넘어 이를 모티브로 하면서 동시에 연동하여 서울역 역세권이란 ‘면(面)의 재생’을 이끌어내는 것을 전제한다. 서울역을 에워싼 지역들은 서로 분리되고 단절됨으로써 도심부 땅으로서 지닌 입지적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왔다. 따라서 이들 지역이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된다면 도심부 장소들은 개성적 활력을 나누면서 상생적 발전을 이뤄갈 수 있다. 이 통합적이면서 창조적 도시재생의 물꼬를 트는 걸 견인할 핵심 장치가 곧 서울역 고가의 재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