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올해초 평소 알고지내던 레미콘업계 직원 A씨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의 부친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부친이 암 판정을 받기 전, 특정 업체에서 만든 자가진단키트 결과에선 '음성'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안심하는 사이 암세포는 급속히 번져 도저히 손 쓸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소송을 준비하던 이 직원은 자가진단키트에 암보험 약관처럼 깨알같은 문구를 확인하고 포기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 진단키트는 대장암 진단의 보조수단입니다"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가진단 결과를 신뢰한 대가는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하는 A씨에게 마땅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전 인도공장에서 근무하는 오리온 직원 B씨가 현지에서 사망해 국내로 송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직원 B씨는 사후 실시한 코로나19(COVID-19) 진단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글로벌 코로나19 확진자의 절반이 발생하는 인도에 머무르고 있던 B씨에게 거의 유일한 자기방역 도구는 회사에서 보내준 '자가진단키트'였다. 그는 감기 기운에도 불구하고 자가진단키트에서 음성이 나오자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는사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의 몸을 서서히 잠식해갔고, 당사자는 이런 사실도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달부터 가정용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가 출시되면서 기대와 함께 커지는 우려는 이런 점이다. 질병의 감염여부를 스스로 확인하는데는 여러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국내 코로나19 임시사용허가를 받은 자가진단키트의 민감도는 90% 정도다. 민감도는 양성을 양성으로 표시할 확률이다. 환자 10%는 걸러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전문가와 달리 개인은 사용이 미숙하거나 충분히 숙지하지 않을 경우 반대의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검체가 오염될 수 있고 제대로 추출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일례로 전문가와 개인의 코로나19 검체 채취방식이 다르다. 전문가용 진단키트의 검체 채취 위치가 바이러스가 많이 분포한 비인두(코 뒤쪽, 인후의 위쪽에 있는 부위)인 반면 개인용 진단키트의 경우 이보다 적은 비강(콧속)에서 채취하고 있다. 자신의 콧속에 아프고 깜짝놀랄 정도로 깊숙히 면봉을 집어넣을 사람은 많지 않다. 검사의 정확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과에 대한 입장도 개인은 전문가와 다르다. 아무리 보조수단이라고 해도 음성이란 결과물을 받게 되면 의심은 신뢰로 바뀐다. 양성일 때 받을 충격을 회피하고 싶은게 인간의 속성이다. '증상이 발생하면 진단검사부터 받아야 한다'는 방역수칙은 자가진단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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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진단의 한계는 비단 의료계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다. 불가리스의 코로나19 효과로 논란을 빚은 남양유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남양유업은 얼마전 외부가 아닌 내부 인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곪은 부위를 도려내겠다는 것이다.
남양유업 비대위가 내놓은 첫 결과물은 홍원식 전 회장이 모친과 장남의 이사회 사임을 알려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심이 집중된 홍 전 회장 자신은 사임 명단에서 뺐다. 이미 최대주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홍 전 회장이 이사회를 계속 이끌겠단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홍 전 회장은 지난 4일 대국민 사과에서 "모든 잘못은 저에게서 비롯됐다"며 "남양유업 가족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거두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남양유업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분명한 것은 자가진단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가진단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