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학문의 어려움과 경쟁력

[김남국의 아포리아]학문의 어려움과 경쟁력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07.22 02:05
김남국 교수
김남국 교수

[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올해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경계와 관계'를 주제로 기념강연을 했다. 그는 어떤 대상의 관계를 포착하기 위해 먼저 경계를 짓는 일이 필요하고 경계를 포착하고 뛰어넘을 때 두 대상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물체를 나누는 기준은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린 것이며 보편적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부수고 나아가고 다시 새로운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발전도 결국 경계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가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강연은 정치학자가 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듯싶다. 예컨대 근대국민국가는 민족이라는 관계를 중심으로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사회통합과 정당성 문제를 해결했고 비로소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경계 안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인간의 범주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간주됐고 지구화 시대 이후 국민국가의 경계가 배타적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하자 경계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난민과 여러 개의 경계에 속한 복수국적자가 동시에 등장했다.

허 교수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 교육이 그의 성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당연히 한국과 미국 교육과정이 그의 발전에 나름의 기여를 했겠지만 대학 교육의 경쟁력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낫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허 교수가 서울대에서 배운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는 미국이 연구인재를 수입하는 나라인데 비해 일본은 연구성과를 수입하는 나라라고 그 차이를 표현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포용력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연구의 토대라는 차원에서 보면 미국의 경쟁력은 아직까지 세계 최고다.

세계적 명문대학들은 훌륭한 교수가 많고 공부를 강도 높게 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훌륭한 교수가 있어야 뛰어난 학생이 몰려들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충분한 재정이 필요하다.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토론하려면 수업규모가 작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이 많다고 모두 명문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돈 없이 명문대학이 되는 경우도 없다. 그러니까 학생 등록금만으로 유지되는 대학이 명문대학이 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고 대학교육의 궁극적 수혜자로 사회의 적극적 후원이 필요한 것이다.

연구토대 강화와 함께 연구내용 역시 심화해야 하는데 첫째 연구주제가 전문화해야 하고, 둘째 연구방법이 과학화해야 하며, 셋째 연구융합을 통한 창조가 가능해야 한다. 허 교수의 강연에 대한 해설에서 그가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여러 수학분야를 연결하는 이론적 틀을 고안함으로써 수학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평가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연구내용의 심화는 상대적으로 현재 우리 여건에서도 시도해볼 수 있고 물적 자원이 필요한 연구토대를 보완하기 위해 해외 대학과 공동학위나 교환학생제도 시행도 도움이 된다.

1980년대에 586세대가 시도한 사회과학의 한국화 노력은 열악한 연구토대 상황에 대응한 극단적 주관주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과 서구중심주의 해체를 목표로 경계를 넘는 해외유학보다 지리적 단절을 택한 이들은 세계화의 바람과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를 주관적 의지로 버텨내는 힘든 과정을 거쳤다. 코로나 위기로 비대면 온라인 회의가 활성화하자 뜻밖에도 경계 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좁혀졌다. 물론 물리적 거리가 해소되더라도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 우리 의식 안에서 재생산되는 한 우리 학문의 경쟁력 제고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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