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입된 지 23년이 된 예비타당성조사제도(이하 예타)는 정부 예산지출 규범을 정립해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책무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타당성이 미흡한 346개 사업(전체의 35.9%)에 대한 183조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총론적 평가와 달리 예타 이해관계자들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은 숙원 사업의 특수성을 내세워 예타 관문을 회피하려 한다. 국회에는 예타 면제를 시도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20건 이상 제출되고 있다. 사업 주무부처는 재정당국의 예타 간섭 없이 사업 추진의 재량권을 갖고 싶어한다. 재정당국 내에서조차 외부 전문가들이 작성한 참고자료 성격의 예타 보고서가 재정당국의 예산편성 권한을 제한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대규모 재정투자 사업은 '기본구상→기본계획→예타→본타당성조사→설계→시공' 단계별로 사업추진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예타의 영향이 커지면서 예타 이전 단계는 예타에 대비한 자료수집 과정이 되고, 천신만고 끝에 예타를 통과한 이후에는 형식적인 검토가 관행화됐다. 예타가 눈총을 받아 가며 여러 단계의 예산 관문 절차에서 외롭게 문지기(gatekeeper)로 서 있는 형국이다.
예타는 1999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과정에서 재정지출 삭감을 직접적인 목표로 도입됐다. 따라서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한 이전 정부에서 예타가 불편한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업이 예타에서 면제됐다. 지역 민원 사업들은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포괄적인 이유로 예타 검증을 생략한 채 사업 추진이 결정됐다. 이 기간 동안 예타 통과율도 74%로 상승했다. 특히 비수도권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예타 통과율은 89%로 예산 절차상 가장 까다로운 예타 관문을 십중팔구가 통과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였다.
재정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느슨한 예타 운용의 고삐를 죄는 제도 개편을 발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획재정부는 우선 예타 면제 요건을 구체화해 면제 대상을 엄격하게 선택하기로 했다. 면제 사업에 대해서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강화하는 등 사후관리를 강화한다. 다른 한편, 예타 이해관계자들의 불필요한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사업부처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예타 대상 사업 기준액을 상향 조정하고, 사업부처가 예타 분석 내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업부처의 참여를 확대한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 진행상황을 공개해 조사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한다. 또한 예타 평가를 내실화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고, AHP(종합평가) 수행체계를 개선해 의사결정의 강건성을 제고한다. 예타를 받쳐온 객관성, 일관성, 투명성 제고라는 기둥을 튼튼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예타가 이룬 성과를 요약하면 대규모 재정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탈정치화해 공공투자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이는 '예산과정은 결국 정치적 과정'이라는 현실적 명제와 충돌한다. 예타가 성공할수록 힘센 주체들의 눈총을 받으며 시달릴 모순적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예타가 그 숙명을 잘 감내하고 재정운용의 문지기로서의 순기능을 지속, 확장하며 발전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