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송강호는 아들에게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면서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계획이 대책일 리는 없다.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리먼 브라더스 등 대형금융회사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와 복잡한 파생상품거래 등으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이를 계기로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는 2011년 효과적으로 대형금융회사 부실을 정리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권고안의 핵심은 '사전유언장'으로도 불리는 정상화·정리계획(RRP) 제도다. 이 제도는 대형금융회사가 부실화될 상황에 대비해 질서정연한 정리가 가능하도록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대형금융회사의 부실로 초래될 수 있는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에 미국, 유럽 등 금융선진국은 대형은행과 대형투자회사에 대해 정상화·정리계획을 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지주회사 및 5대 은행을 대상으로 RRP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정상화계획을, 예금보험공사는 정리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을 고려할 때 은행보다 RRP제도 도입이 시급한 증권사에는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증권업은 경쟁력 강화 필요성에 따라 다수의 증권사가 대형화됐다. 발행어음 업무를 통해 은행의 예금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대규모 증권매입 등 자금공급 기능이 강화되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또 지난해 말 주가연계증권 등 파생결합증권, 환매조건부채권 규모는 각각 101조원, 128조원에 이르고 지속적인 증가세에 있어 위기 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아울러 9개 대형 증권사의 지난해 말 장외파생상품 계약금액은 약 1200조원에 달해 증권사 부실로 파생상품이 조기 종결된다면 금융시장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 후 5주 내에 보유 파생계약의 약 80%인 73만건이 조기 종결돼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붕괴를 가속한 사건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중국발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자본시장에 일차적으로 그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
이처럼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금융시장과의 연계성이 한층 높아져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자칫 시스템 리스크로도 번질 수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 다이아몬드 교수는 은행에 비해 규제가 느슨한 투자회사 등 비은행금융회사가 다음 위기의 근원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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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형 증권사가 부실화되었을 상황에 대비한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또다시 사회적 혼란과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대형 증권사에도 정상화·정리계획을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