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하구지역에 수도가 생긴 지 1000년이 넘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1000년간 경주가 수도였다. 한강 하구는 무엇보다 중국과의 교류에 유리한 지역이었기에 국가의 대외교섭 창구가 될 수도로 최적이었던 것이다. 한강 하구에서 뱃길로 산둥반도로 건너가기도 좋고 서해안을 따라 육상으로 산해관을 거쳐 중국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당시엔 문명과 힘의 원천인 중국과 교류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만이 세상의 중심이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 우리가 교류하는 세상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유럽도 인도도 중동도 동남아시아도 있는 지구 전체로 더욱 넓어진 세상이다. 그 넓어진 세상은 남쪽으로 뚫린 바다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젠 북쪽이 아니라 남쪽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고 세상의 바람이 들어오는 통로다.
곧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부산지역의 표를 의식해 '제2수도'니 '경제수도'니 여러 표현을 내놓지만 얼마나 진지한 구상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부산에 KDB산업은행이나 몇몇 공공기관을 옮기는 정도로는 부산이 그런 핑크빛 공약대로 서울에 필적하는 '경제수도'가 될 수는 없다. 명실상부한 '경제수도'가 되고 서울과 맞먹는 메트로폴리스가 되려면 인구가 1000만명 가까이 돼야 하고 그 주변에도 거대한 '경제수도권'이 생겨야 할 것이다. 이는 공공기관 몇 개 이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정도의 지각변동급 변화가 일어나려면 국가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변혁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이 있다면 굳이 인위적으로 공공기관을 옮기지 않아도 많은 대기업이 경제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산과 남해안 방면으로 터를 옮기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따라 남쪽으로 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그립이 약화해야 한다. 중앙정부 주도로 경제발전을 해온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와 가까이 지내야 기업이든 학교든 문화활동이든 모든 부문에서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중앙정부의 행정계통이 세종으로 옮기긴 했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정무계통은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는 상태이므로 공장은 울산, 창원, 광주에 있어도 대기업 본사는 서울에 둘 수밖에 없다. 경제운용에서 연방정부가 우리만큼 주도적이지 않은 미국은 기업들이 정치가 아닌 경제의 논리에 따라 공장을 짓고 본사를 마련한다. 그래서 지금 미국 경제를 이끄는 IT산업은 수도 워싱턴DC에서 멀리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의 1987년 민주화는 대통령직선제만을 가져온 민주화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국가 체질 자체는 바꿔내지 못했다. 중앙정부가 한발 물러서고 시장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자치와 분권'의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만 된다면 대기업들도 더 이상 서울에 자리잡을 이유가 없고 무역이 편한 부산과 남해안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부산은 인구 1000만명의 '경제수도'가 되고 목포까지 이어지는 남해안 지역은 한국의 캘리포니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경주에서 개성으로 수도가 옮겨졌듯이 언젠가 서울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 부산으로 수도 자체가 옮겨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