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였다. 2024년 1~9월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보다 1.5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시적이긴 하나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제시한 1.5℃라는 마지노선을 넘은 것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시 한번 파리협정을 탈퇴하는 등 지구는 점점 뜨거워진다. 이제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국제사회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 중 하나가 정부예산을 기후변화 정책목표와 연계해 운용하는 '녹색예산제도'다. 이는 환경 및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정부예산이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예산편성 과정에 환류하는 재정수단이다. 2022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국,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등 24개국이 녹색예산제도를 운용 중이며 이 숫자는 빠르게 증가한다. 우리나라도 2021년 9월에 제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근거로 2022년부터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를 운용한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R&D(연구·개발)분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선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가 R&D 재정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평가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일반재정과 R&D재정을 구분해 관리하며 세부 사업단위에서 온실가스 감축예산과 감축량을 명시하는 특징이 있다.
R&D분야의 주요 감축사업을 식별하는 과정의 의의는 있으나 감축효과를 정량화하기 어려운 R&D사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감축효과에 대한 평가와 예산편성 간의 환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R&D의 특성상 예산투입과 효과발생 시점 사이에 시차가 있고 사업별로 개발 대상 기술의 수준과 종류가 다양해 평가지표를 표준화하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고서에선 기존 구축된 국가R&D사업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론 R&D 성과평가제도와 연계할 것을 제안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서 데이터와 국가R&D사업 조사분석 데이터를 연계·분석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인 예산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 대상사업을 온실가스 배출사업(기후변화에 부정적인 사업)까지 확대하고 이러한 사업들의 해결책으로 R&D 재정감축 사업의 성과를 연계·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세계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인류 공동의 난제 앞에 147개국의 탄소중립 선언, 탄소 무역장벽화, 기업들의 ESG경영 확산 등 전방위 경제·사회적 변화로 대응한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이산화탄소 감축량의 약 95%가 기술혁신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히트펌프 등 탄소중립 기술보급이 확대되지 않았다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3배 더 높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기술개발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자 인류 공동의 목표로 주목받는다.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재정수단의 뒷받침이 필수고, 특히 정부 R&D예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탄소중립 R&D와 기술혁신의 장대한 여정은 이제 시작됐다. R&D분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결산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논의와 연구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