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중국명 '볜하오 17')이 중국 상하이, 선전, 광저우, 청두 등 7개 도시에서 개봉하면서 한한령 해제의 기대감이 한결 높아졌다. 사실 해외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하려면 광전총국의 꼼꼼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당국의 용인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이 한국 영화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태도가 변화한 조짐으로 읽힌다.
하지만 영화 '미키 17'은 한국과 관련성이 거의 없는 할리우드 영화다. 연출과 각본만 봉준호 감독이 담당했을 뿐 제작·투자사와 배우들은 미국인이 중심이다. 한국 배우는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한 작품이니 더욱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영화다. 비록 그렇더라도 서방 영화에 참여한 한국 감독의 작품 수입을 허가하면서 화해의 시그널을 보내는 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한한령에 대한 기대감은 사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에 한정되진 않는다. 지난 2월 초 중국은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참석 의사를 피력했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7월 이후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셈이다. 한한령은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 이후인 2017년 사드배치 이후 불거진 것이기에 방한과 함께 2014년 분위기로 돌아가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이밖에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국내 주요 게임사의 콘텐츠에 대해 외자판호(서비스 허가)를 연이어 승인했다는 점도 논거로 든다. 아울러 상하이 등 지역에서 적극적인 태도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하이 당국은 걸그룹 '트리플에스'의 공연을 허용했고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는 이미 중국판 '런닝맨'이나 광고 등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좀 더 세밀히 봐야 한다. 걸그룹 '트리플에스'는 유닛활동을 하는데 이번에 상하이에서 공연하는 유닛에는 한국인 멤버가 없다. (여자)아이들의 멤버는 중국인 멤버 우기로 베이징시 출신이며 이미 2023년부터 중국에서 활동했다.
게임의 외자판호 승인은 몇 년 전부터 이뤄졌으나 성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하이난에서 K팝 공연이 성사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이 지역도 상하이와 마찬가지로 한한령 이전엔 한류열풍이 거셌던 곳일 뿐이다. 중국 남부지방은 옛 송나라 지역으로 이익이 되면 얼마든지 비즈니스를 할 자세가 돼 있지만 북부 베이징시 중심의 공산당 통제는 넘기 힘들다.
더구나 공산당의 문화정책 기조는 한족문화에 바탕을 둔 문화산업 육성이다.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가 중국 영화 최초로 3억 관객을 돌파했고 RPG(역할수행게임) '검은 신화:오공'은 해외에서 2100만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각각 영화와 게임이지만 공통점도 있는데 모두 중국의 전통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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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너자 시리즈는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물리치는 고전소설 '봉신연의'에 기반하고 '검은신화- 오공'은 제목 그대로 '서유기'에 바탕을 둔 콘텐츠다. 이런 전통문화 자원에 바탕을 둔 콘텐츠의 성공사례들은 중국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심지어 '너자2'는 미국을 비판하는 콘셉트에 애국주의를 가미했다. 하지만 14억 인구의 중국 내 반응은 뜨겁지만 글로벌 호응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항미원조' 경향의 영화인 '장진호'가 중국 내 흥행 1위를 기록했는데 세계적인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러한 사실을 중국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수는 없다. 즉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데 한한령을 섣불리 풀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화주의를 강화하거나 확장하는 콘텐츠에 우리의 협력이나 지원을 바라는 정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