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런던 지하철 승강장의 'Mind the Gap'(마인드 더 갭) 문구는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을 조심하라는 경고다. 단순 안전문구를 넘어 사회 전반의 격차와 불균형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인용된다. 소득 불평등이나 기회의 격차처럼 보이지 않는 틈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한국 ICT(정보통신기술)산업이 처한 현실을 보면 이 문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디지털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ICT산업의 균형이 무너졌다. 다양한 플랫폼기업이 경쟁하던 시장은 일부 글로벌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됐다. 유튜브 등 해외 대형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국내 동영상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으며 네이버TV나 카카오TV 같은 국내 플랫폼은 대부분 경쟁력을 상실했다. 트래픽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고 스타트업은 경쟁력을 잃었으며 창작자와 광고주 역시 거대기업의 정책변화에 종속되는 구조에 놓였다.
시장 불균형으로 인한 피해는 이용자에게 전가된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여러 차례 요금을 인상했고 동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해외보다 불리한 가격정책을 적용해왔다. 예를 들어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 중인 가족요금제나 학생할인제 같은 혜택을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요금인상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자체규정을 앞세워 이용자 보호에 소홀한 사례도 빈번하다. 계정정지나 콘텐츠 삭제 같은 중요한 사안조차 기준 없이 행해지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항의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해주길 기대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시행하며 이런 플랫폼의 문제에 대응한다. 한국도 약관신고제, 인앱결제 강제금지 등 이용자 보호방안 마련에 나섰다. 미국은 이런 움직임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고 세계를 압박한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검토 중인 플랫폼 개선방향은 국적에 따른 차별이 아닌 '시장 내 형평성'을 위한 조치다. 모든 플랫폼은 공정한 책임을 져야 하며 국내 이용자의 피해를 개선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망사용료 문제도 시장 내 불균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사업자는 국내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법정다툼까지 벌였다가 패소했다. 특정 기업이 네트워크에 사실상 무임승차한 구조는 시장경쟁과 이용자 후생을 악화시킨다.
지금 한국 ICT 시장은 중대기로에 서 있다. 대형 플랫폼이 국내에서 거둔 이익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규모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고 망 무임승차 문제를 바로잡으며 이용자 보호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과제다. 시장균형이 더 기울기 전에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공짜 점심'은 없다. ICT산업이 지속성장하려면 특정 기업의 이익보다 이용자의 권익과 공정한 경쟁질서가 우선돼야 한다.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플랫폼이 합리적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정비한다면 분쟁의 소지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디지털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