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일본 자민당의 자만, 다카이치의 위기

[우보세]일본 자민당의 자만, 다카이치의 위기

김하늬 기자
2025.10.16 05:49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4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후 연설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AFPBBNews=뉴스1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4일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후 연설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AFPBBNews=뉴스1

"저는 자민당 총재가 됐지만, 총리는 못 할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불쌍한 다카이치입니다."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 신임 총재 다카이치 사나에가 당선 열흘 만에 자신의 '처지'를 이같이 밝혔다. 총재 선거가 치러진 4일까지만 해도 현지 언론은 앞다퉈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 가능성을 조망했다. 실제로 60여년간 일본 정치 권력을 독점해 온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게 그간 일본 정치의 '공식'이었다.

다카이치 이름 앞엔 늘 '여자 아베'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아베노믹스' 신봉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민당 내 가장 큰 아베 파벌이 다카이치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여자 아베라는 별명은 든든한 정치자산이었다. 일명 '펀쿨섹좌'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가 대중 지지도는 더 높았지만 다카이치가 총재로 뽑힌 이유다. 자민당 총재 선출 방식은 국회의원과 권리당원, 광역단체장 등 당내 '조직' 투표에 가깝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한국에서 ‘펀쿨섹’ 발언 등 이례적인 발언과 행보로 유명해진 정치인이다. 2019년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서 그는 “기후변화 문제를 대할 때는 즐겁고(Fun) 쿨하고(Cool) 섹시(Sexy)해야 한다”고 말해 ‘펀쿨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로이터=뉴스1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한국에서 ‘펀쿨섹’ 발언 등 이례적인 발언과 행보로 유명해진 정치인이다. 2019년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서 그는 “기후변화 문제를 대할 때는 즐겁고(Fun) 쿨하고(Cool) 섹시(Sexy)해야 한다”고 말해 ‘펀쿨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로이터=뉴스1

총재로 뽑힌 다카이치가 이번엔 파벌에 '은혜'를 갚아야 할 시간이 된 걸까. 그는 당선된 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보류할 수 있다고 물러섰지만, 정치 자금 규제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6년간 자민당과 함께 연립 정권을 유지해 온 공명당이 "기업·단체 헌금(기부금) 폐지를 포함한 정치 자금 규제안"을 내놨지만, 다카이치는 끝까지 응답하지 않았다. 공명당은 이를 공개 저격하며 10일 연립 이탈을 선언했다.

다카이치로서는 당의 큰 '돈줄'을 끊기 어려웠을 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기업·단체 정치헌금의 90%가 자민당으로 흘러들었다. 2023년 초 터진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들'도 이와 연관이 깊다. 자민당은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열면서 초선은 50장, 재선은 100장의 입장티켓 판매 할당량을 뒀는데, 주로 기업과 단체에 판매를 떠넘겼다. 많이 팔아오는 의원은 일부 금액을 리베이트 형식으로 돌려받았다. 티켓 가격은 평균 2만엔(19만엔)이었지만 정가는 아니고 더 비싸게 판매할 수도 있는 구조였고, 장부는 허위·누락 기재되기 일쑤였다. 이 사건 이후 자민당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7월 중의원·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연속 참패했고, 단독 과반을 내줬다.

누가 총리가 되든 당분간 자민당의 앞길은 험난해 보인다. 소수 여당의 상황상 예산안과 법안 통과가 어려워지고 내각 불신임안이 발의될 수도 있다. 이는 다카이치라는 한 명의 정치인 탓이라기보다 '돈의 정치' 관행과 결별하지 못하는 자민당의 악습 때문이다.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일본 자민당의 정치 파티는 우리 정치권의 출판 기념회와 묘하게 닮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줄줄이 출판기념회나 북콘서트를 연다. 책값의 한도나 회계 보고 의무도 없다. 출판 기념회로 수억 원을 모았다가 구설을 빚은 정치인들이 많다는 점도 일본과 흡사하다. 제도 보완이 필요한 건 옆나라 일본뿐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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