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스플로라토리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 최고의 핸즈온(Hands-On) 과학관이다. 1969년 프랭크 오펜하이머가 설립했다. 그는 핵과 우주선 물리학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이자 실험실 교육의 혁신가였다.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이곳은 물리화학, 생명과학, 인간행동, 예술 등 다양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말했다. "재미 있어서 아무도 박물관에서는 낙제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과학관의 개념을 바꿨다. 전 세계 약 1000개의 과학관이 핸즈온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따른다.
익스플로라토리엄은 10월20일을 '설립자의 날'(Founder's Day)로 정해 창립을 기념한다. 그러나 이날은 오펜하이머의 생일도, 기념일도 아니다. 1969년 개관 당시에도 팡파르 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전통적인 공식 행사도 없다. 대신 방문객이 직접 참여하는 실험, 강연, 데모시연, 특별체험 퍼포먼스가 열린다. '성인 대상 야간프로그램(After Dark)', 커뮤니티 행사, 무료입장일 등을 통해 창립정신을 되새긴다. 이것이야말로 익스플로라토리엄다운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답은 그의 '탐험정신'에 있다. 오펜하이머는 1965년 구겐하임재단의 지원으로 유럽의 과학관들을 방문했다. 그때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많은 관람객이 유리 전시장 안의 전시물을 보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1966년부터 핸즈온 과학관을 준비했고 3년 뒤인 1969년 이 과학관의 문을 열었다. 그는 1982년 미국박물관협회(AAM)에서 과학 및 박물관 교육혁신에 기여한 공로로 최고 영예의 상을 받았다. 당시 AAM은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박물관이 될 수 있는 것의 정의 자체를 바꾼 사람이다." 오펜하이머가 수상한 이유는 4가지였다. 첫째 과학관을 '탐험과 발견의 공간'으로 재정의한 혁신성, 둘째 핸즈온과 마인즈온(Minds-On) 학습철학, 셋째 과학·예술·기술을 통합한 공공학습모델, 넷째 박물관을 '학교 바깥의 학교'(School beyond school)로 확장한 공헌 등이다. 그는 수상연설에서 '지식의 전달'보다 '발견의 기쁨'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을 정답의 학문으로 생각하지만 과학의 본질은 끝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학생에게 답을 가르치는 대신 그 답을 찾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익스플로라토리엄의 슬로건은 이렇다. '질문의 답을 찾고, 답이 다시 질문이 되는 곳.'
이곳에서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색이다. 그는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아이들과 어른 모두 탐험의 기회를 잃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길을 잃을 기회도 없다. 심심하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TV 스위치만 돌릴 뿐이다. 따라서 과학관은 잃어버린 탐험의 자유를 되찾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는 또 말했다. "탐험은 비생산적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우연한 발견이 새로운 길을 연다."
독자들의 PICK!
그는 예술에 대해서도 통찰이 있었다. "과학과 예술은 발견의 두 언어다." 과학은 자연을 탐구하는 방법을 제공하지만 인간의 경험을 해석하고 전하는 일은 예술의 몫이다. 두 분야는 모두 패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공간·시간·행동의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재구성해 의미를 찾는다. 둘 다 질서와 무질서의 전환, 긴장과 해소의 구조, 문화적 유산의 표현과 깊이 연관돼 있다. 익스플로라토리엄은 사람들에게 물리학자의 눈과 예술가의 눈으로 자연을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이건 과학이다, 저건 예술이다."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연령층이 새롭게 배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2025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가 500만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많은 국립과학관은 관람객이 줄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