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신라의 고승 원측, 경주와 시안, 한국과 중국을 잇다

[청계광장]신라의 고승 원측, 경주와 시안, 한국과 중국을 잇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25.10.27 02:05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국 시안 시내에서 종남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홍교사(興敎寺)라는 절이 있다. 흥교사는 고승 현장의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장은 당시까지 소개된 불교 경전에 의문을 품고 인도에 유학해 수많은 경전을 갖고 돌아온 뒤 조정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경전번역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중국 불교를 일신했다. 또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로 당시 실크로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 인물이다. 주지하듯 그의 여행은 훗날 소설 '서유기'의 모티브가 됐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사리탑 곁에 신라인 고승의 사리탑이 있는 걸 아는 이들 역시 드물다.

이 사리탑의 주인은 원측이다. 원측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627년 15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해 태종으로부터 도첩을 받고 당대의 고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해 훗날 신유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식학(唯識學)을 제창하자 원측은 기존의 구유식과 신유식 양쪽의 사상을 절충해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했다. 신라가 과정에서 당과 마찰을 빚자 원측은 종남산에 들어가 은거했으나 곧 양국이 관계를 회복하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당 조정은 6개 국어에 능통한 그에게 서역 승려 접대와 역경 사업을 맡겼다. 측천무후는 그를 살아 있는 부처처럼 대우했다.

원측의 사상은 현장과 그의 제자 규기의 이론과 병립하며 유식학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당시 원측은 서명사(西明寺)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서명학파로, 현장과 규기는 자은사(慈恩寺)에 있어 자은학파로 불렸다. 두 학파는 서로의 이론을 논박했고 이런 갈등은 "원측이 현장의 강의를 몰래 엿듣고 그것을 자신의 주장처럼 소개했다"는 이른바 도강설(盜講說)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도강설은 사실이 아닌 모함에 불과하며 오히려 원측의 가르침이 조정의 후원을 받아 널리 퍼졌음을 방증하는 일화라 할 수 있다.

현장을 시조로 하고 규기가 계승한 유식학은 법상종(法相宗)으로 정립됐으나 8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반면 원측의 가르침은 신라 출신 유학승인 도증을 통해 신라에 뿌리내려 해동법상종(海東法相宗)이 됐다. 법상종은 고려시대 6대 종파 가운데 하나로 이어졌다. 신라와 당은 전성기를 함께하며 한국과 중국, 양국 관계사에서 빛나는 시기로 평가된다. 유식학의 기본 경전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648년 5월 당에서 번역됐고 곧바로 신라에 소개됐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새로 번역된 경전이 신라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당시 양국 교류의 긴밀함을 보여준다. 원측은 그 중심에 있었다.

곧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2025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10월3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이후 11년 만이다. 지난 11년간 한중관계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년 교역은 늘어나는 데 비해 양국의 상호이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APEC은 두 나라 관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APEC 개최지는 원측의 고향인 경주다. 시안 흥교사 원측의 사리탑은 현장의 사리탑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원측은 당나라에서 훌륭한 스님으로 추앙받았을 뿐 아니라 그 정신적 유산은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적 연결고리로 남았다. 이런 맥락에서 원측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 한중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립경주박물관은 APEC 개최에 맞춰 지금까지 발견된 6개의 금관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처럼 이번 각국 정상의 만남이 뜻깊고 빛나는 결실을 이루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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