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준위 방폐물, 국민 공감으로 매듭지어야

[기고]고준위 방폐물, 국민 공감으로 매듭지어야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2026.02.13 05:40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현대사회에서 전기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침을 깨우는 스마트폰부터 밤하늘을 수놓는 도시의 불빛까지,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의 풍요는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엔진이 뒷받침해 왔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엔진이었던 원자력은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며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됐다.

하지만 눈부신 풍경 이면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가 남아 있다. 바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다. 전기를 사용하는 혜택을 누렸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온전히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현재 의료·연구·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경주 처분시설에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원전 연료로 사용된 후 배출되는 고준위 방폐물은 상황이 다르다. 높은 열과 방사능을 지닌 이 폐기물은 지하 500m 이상의 깊은 암반에서 10만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생태계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2만여 톤에 달하는 고준위 방폐물은 각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에 '임시'로 보관되고 있는데, 이 저장 공간은 이미 포화 상태에 직면했다. 임시는 임시일 뿐 결코 영구적 해법이 될 수 없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해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이 온다면 이는 단순히 에너지 산업의 위기를 넘어 국가 안보와 민생 경제 전체를 흔들게 될 것이다.

막연한 우려가 아니다. 작년 4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부 도시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발생한 주파수 급락은 네트워크 전반의 연쇄 셧다운과 공항 마비라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이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과 그 가동을 지속하기 위한 방폐장 확보가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보여줬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안전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과정에서 겪었던 9차 실패와 갈등은 기술의 미비함이 아니라 '소통과 신뢰'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안전은 진정한 의미의 안전이 될 수 없다.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완료한 핀란드의 '온칼로(Onkalo)'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성공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단순히 세계 최고의 기술력 때문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걸쳐 지역 주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쌓아 올린 두터운 '신뢰'가 사회적 합의의 바탕이 됐다.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명확하다. "어떻게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할 것인가." 해답은 결국 '국민의 공감'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투명한 정보 공개.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막연한 공포를 거두고 신뢰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둘째, 실질적인 주민 참여.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주민의 목소리가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소통 창구를 넓혀야 한다. 셋째, 단순 보상을 넘어 지역의 장기적 발전 비전 제시. 산업과 교육, 일자리가 선순환하는 청사진을 통해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할 기반을 닦는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단순히 폐기물을 지하 깊숙이 묻는 공사가 아니라, 우리가 누려온 혜택에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자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일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이다. 지금 우리가 매듭짓는 책임은 다음 세대의 평온한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미래의 풍요를 위해 현재의 책무에 전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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